식혜, 천연소화제
상태바
식혜, 천연소화제
  • 이경일
  • 승인 2020.01.13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어린 시절, 명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어린 마음이 더욱 다급해지고는 했다. 명절이 더디 오는 걸 힘겨워하며 마냥 하루하루 날짜만 세고 있던 어린 나처럼, 그 무렵쯤이면 어머니도 무엇에 쫓기듯 몸을 바삐 움직였다. 설 명절 음식의 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쁘던 까닭이다.

 

까치까치 설날을 노래하던 어린 나와 동생들의 곁을 자주 지나쳤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에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와 음식 재료가 들려져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나와 형제들의 눈은 어머니의 손에 고정되어 부르던 노래를 잊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만드는 것일까? 우리들의 가장 큰 궁금증이었다.

정성이 가득담긴 명절음식
정성이 가득담긴 명절음식

 

까치설날 전쯤이 되면, 어머니는 그냥 먹기에는 힘든 고두밥을 한 솥 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두밥을 하얀 물에 정성스레 섞고는 담요로 꽁꽁 싸매서 우리가 놀고 있던 아랫묵 한켠에 얌전히 놓아뒀다.

 

마당에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을 쯤, 어머니는 담요로 꽁꽁 싸맸던 고두밥물을 들고 부엌으로 갔고, 솥에 부은 뒤 잔가지로 불을 지핀다. 열린 솥에서 하얀 김이 구름처럼 피어질 때까지 불을 땠는데, 궁금함을 못 참고 솥에 고개를 들이밀면 데인다고 크게 야단을 쳤다.

 

어머니는 명절과 제사 마다 꼭 식혜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쯤에 생각해보면 집 안 식구들과 오가는 인척들이 갑자기 먹게 되는 기름진 음식에 위나 장이 탈이 날까봐 상비약처럼 준비해 놓은 것이다.

전통 식혜
전통 식혜

 

내 작은 유년의 기억엔 작은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던 뜨거운 식혜와 달콤해서 모두 코 속으로 몰아넣고 싶었던 하얀 김이 있다. 해마다 설 명절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식혜이기도 하다.

 

식혜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료이다. 엿기름가루를 우려낸 물에 밥을 삭혀서 만든 천연 발효 음식이다. 달콤한 맛이 나기 때문에 감주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처럼 약이 흔하지 않던 오랜 시절부터 천연소화제 역할을 해왔다.

 

식혜가 왜 명절음식이 되었을까? 식혜는 주재료가 보리와 쌀로 만들어진 섬유질 음료이다. 기름진 명절음식을 먹은 뒤에 오는 더부룩함과 소화불량을 다스리던 어머니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었다.

 

보리의 싹을 발아시켜 만든 엿기름가루를 물에 우려내고, 엿기름 맑은 물과 밥을 섞어 삭힌다. 밥알이 삭아 떠오르면 생강 등을 넣고 끓여주면 맛있는 식혜가 된다.

 

보통 식혜는 당도가 높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겠지만, 보리와 쌀에서 나오는 주성분인 포도당은 쉽게 포만감을 주며, 식이섬유 또한 다이어트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통 식혜는 지방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경북 안동과 의성 지역 등에서 만들어 먹는 안동식혜가 있다. 고운 고춧가루와 생강, 무채를 삭혀 거른 후에 견과류를 띄워먹는다. 안동식혜는 제사상과 명절 손님 접대에 꼭 올리는 경북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무가 들어가 소화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2020년 경자년 설맞이 음식으로 우리 민족 전통의 식혜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나누어 더욱 행복하고 건강한 설 명절이 되어보자.

                                                                                                                                     사진=CPN문화유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