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 -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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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억 - 기와
  • 이경일
  • 승인 2020.02.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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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백련사의 조선시대 기와 1

지붕을 덮어 가 실내에 유입되는 것을 막고, 초가집이나 너와집 등, 지붕이 썩어버리거나 새어서 자주 갈무리를 해야했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던 것이 기와였다. 점점 건축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을 치장하는 용도로도 쓰이며, 기와는 다양한 형태로 발달해왔다.

 

기와의 옛말은 '디새'이다. 디새가 '지새'가 되고, '지애'가 되었다가 현재의 '기와'로 변화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와지붕은 암키와와 수키와로 이어 덮은 후, 처마 끝을 막새나 와당이라는 기와를 사용하여 마무리한다. 이때 암키와의 마무리는 암막새, 수키와의 마무리는 수막새라고 부른다. 경우에 따라 막새 등은 생략되는 경우도 있으며 조선시대 대부분의 집이 막새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생활 속 쓰임새와 풍경 모두를 선물하는 기와, 아름답다
생활 속 쓰임새와 풍경 모두를 선물하는 기와, 아름답다

 

우리 선조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기와에 대한 이야기를 김성구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논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발굴조사나 보고서에 소개되어진 우리 선조들의 옛 유물 기와, 잠들어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을 헤아려보며, 선조들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남원 백련사의 조선시대 기와 1>

 

남원 지리산 백련사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 278지번 일대의 가파른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백련사는 2006년경부터 주지 성로(性露)에 의해 크게 중건된 사찰로,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맥을 이어받고 있다.

기와편
기와편

 

남원 백련사에서는 1997년 무너진 조선시대의 불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목조건물의 지붕을 잇는 많은 기와를 수집하였다. 기와는 기본기와인 암·수키와와 막새인 수막새와 암막새로 구분되고 있다. 수막새는 여러 종류로 구분되어 조선 중기에서 말기에 이르기까지 시기적인 차이를 잘 보여주었는데, 암막새는 건륭 사십년 을미(乾隆四十年 乙未)…」명의 문자가 새겨져 영조51(1775)에 제작된 조선 후기의 기와로 확인되어 중요시되었다.

건물지 전경
건물지 전경

 

기와는 무너진 조선시대의 불전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량이 수집되었다. 건물지는 현재 석축으로 단을 이루면서 잘 정비되었다. 그런데 건물지의 우측에는 돌확과 멧돌이 놓여있고, 기와편이 산재하여 조선시대의 건물터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건물지의 석축 하단에는 무너진 불전에서 수거한 수키와와 암키와가 야적되었는데, 대부분 조선 후기에 사용된 전통기와임을 알 수 있다

수키와 야적 상태
수키와 야적 상태
암키와 야적 상태
암키와 야적 상태

 

 

남원 백련사의 조선시대 기와 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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