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 -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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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억 - 기와
  • 이경일
  • 승인 2020.03.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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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의 작은 산사, 곡성 천태암 출토 기와 2

조선시대의 암키와는 4유형이 출토하였는데 표면에 창해파문과 집선문 등이 새겨졌다. 창해파문암키와는 두 유형인데 고판문의 형식변화에 따라 시기적인 차이를 나타냈다, 창해파문암키와는 작은 파손품으로 표면에 조선 전기에 성행한 창해파문이 새겨졌다. 흑색의 경질기와로 이면에 포목흔적이 뚜렷하다. 암키와의 현재 길이가 12.0cm이고, 그 두께가 2.1cm이다. 다른 창해파문암키와도 작은 파손품으로 조선 전기에 제작되었는데 이면에 포목흔적이 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6.0cm이고 2.1cm이다.

창해파문암키와
창해파문암키와

집선문암키와는 두 유형이 출토하였는데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다. 하나는 파손되었는데 표면에 여러 형태의 선문이 중첩되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5.5cm이고 2.0cm가량이다. 측면에는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도흔이 있으며 이면에 포목흔적은 대부분 지워졌다. 다른 암키와도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는데 표면에 우상과 직선이 복합되어 새겨졌다. 한 측면에는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도흔이 있으며 이면에 포목흔적이 남아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기와의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8.0cm이고 2.5cm이다.

집선문암키와
집선문암키와

근대의 기와는 두 종류가 출토하였는데 집선문이 새겨진 수키와와 암키와이다. 집선문수키와는 표면에 곡선으로 변형된 창해파문과 짧은 선조가 복합되었는데,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된다. 언강과 미구가 있는 유단식으로 미구의 길이가 1.8cm이다. 수키와는 완전한 형태로 그 길이와 지름이 각각 37.0cm, 15.0cm이고 두께가 3.0cm로 투박하다. 두 측면은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도흔이 있고 이면에 포목흔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집선문수키와(근대)
집선문수키와(근대)

집선문암키와는 표면에 변형된 창해파문과 선조가 복합되어 새겨졌는데, 거의 완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기와의 색조가 황갈색을 띠고 있다. 두 측면에는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도흔이 선명한데, 이면에는 포목흔적이 생략되어 근대에 작례를 나타냈다. 기와의 길이와 두께가 각각 35.0cm이고 1.8cm가량이다.

집선문암키와(조선)
집선문암키와(조선)

곡성 천태암에서 출토한 기와는 기본기와가 대부분이다. 기와는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 전기와 후기 및 근대의 작례를 나타냈는데, 천태암의 변천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큰 편이다. 기와는 표면에 새겨진 고판문양과 이면의 포목흔적 및 측면의 분할흔적에 따라 기와의 제작시기와 그 특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곡성 천태암에서 출토한 기와는 조선 전기에는 창해파문이 주로 새겨졌고, 조선 후기에는 집선문이 새겨져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근대의 기와는 암·수키와가 각각 1점씩 출토하였는데 모두 집선문이 새겨졌고 이면에 포목흔적이 생략되어 제작기법의 차이를 나타냈다. 따라서 천태암은 기와를 통하여 조선 전기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번와(燔瓦)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곡성 천태암은 전술한 바와 같이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후,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아직 당시의 자료는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천태암의 지표조사가 겨울철에 정밀하게 이루어진다면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어 그 실체가 더욱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천태암에서 출토한 기와와 도자기, 토기 등은 약간에 지나지 않으나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편이고, 1957년에 일어난 산불로 산사가 일부 소실된 것을 2000년 이후에 여러 불자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중창 복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땅히 그 법등이 오래 계속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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