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 -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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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억 - 기와
  • 이경일
  • 승인 2020.03.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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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어영청에 자리한 산사, 대성암 출토 기와 1

고양 대성암은 북한산 정상부에 건립한 작은 산사(山寺)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96-1 지번에 위치하고 있다. 대성암은 한국불교의 태고종에 속한 작은 암자로 근대에 건립되었는데, 법당과 산신각, 요사채와 부도전 등이 있다 대성암은 1711(조선 숙종 37)에 축조한 북한산성의 어영청 유영터에 건립되었다.

고양 대성암에는 1928년에 제작된 아미타삼존 괘불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49)를 비롯하여 1876년에 제작된 목활자본 묘법연화경(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3), 그리고 1378년에 제작된 선림보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4)1460년에 제작된 육경합부(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80)등 다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고 비지정문화재인 석조와 돌절구, 맷돌 등이 남아있고 많은 기와편이 산재하고 있다. 석조는 평면 사각형으로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는데 길이와 너비가 각각 135cm, 75cm가량이다.

대성암 석조
대성암 석조

 

고양 대성암에서는 약간의 건축부재 이외에 도기와 도자기, 그리고 다양한 기와류가 출토하였다. 도기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항아리의 파손품이고, 도자기는 고려시대의 청자편과 조선시대의 백자편으로 구분된다. 청자편은 청자소문완으로 12세기경에 성행한 순청자에 속하며, 백자편은 완과 대접의 파손품으로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다. 기와는 기본기와인 암·수키와가 대부분으로 대성암 경내에서 출토하였다. 기와는 암·수키와가 대부분으로 고려 초기와 중기 및 후기, 그리고 조선 초기와 후기의 기와로 구분된다.

청자편
청자편
백자편
백자편

 

고려시대의 수키와는 복합문수키와로 일례(一例)가 수집되었는데 표면에 깃과 같은 우상문(羽狀文)과 격자문이 복합되어 새겨졌다. 우상문은 상하로 양분되었고 그 사이에 사격자문이 새겨져,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에 성행한 고판문(叩板文)을 잘 나타냈다. 수키와는 상단과 하단부가 파손되었는데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3cm, 2.5cm가량이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면에 포목흔적이 있다.

고려 복합문 수키와
고려 복합문 수키와

 

고려시대의 암키와는 5례가 출토하였는데 표면에 격자문과 우상문이 단독으로 새겨졌거나 두 문양 등이 복합되었다. 격자문암키와는 조그만 파손품으로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는데 좌측의 암키와는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0.0cm. 2.2cm가량이다. 회갈색의 경질기와로 표면에 정격자가 새겨졌고 이면에는 거친 포목흔적이 남아있다.

고려 격자문 암키와
고려 격자문 암키와

 

우상문이 새겨진 고려시대의 암키와는 2례가 출토하였다. 우상문암키와는 표면에 문양이 새겨졌는데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9.0cm, 2.6cm가량인 작은 기와편이다. 회색의 경질기와로 고려 중기에 해당되는데, 이면에는 굵은 포목흔적이 있다. 또 다른 우상문암키와는 문양이 밀집되었는데 고려 후기의 작례(作例)를 보이고 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0.0cm, 1.5cm인데, 이면에 굵은 포목흔적이 남아 있다.

고려 우상문 암키와
고려 우상문 암키와

 

고려시대의 복합문암키와는 고려 초기의 작례(作例)를 보이고 있는 2례가 출토하였다. 복합문암키와는 작은 파손품으로 굵은 우상문과 격자문이 함께 새겨졌는데, 전술한 복합문수키와와 조합된 것으로 간주된다. 암키와의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8.2cm, 2.0cm가량인데, 이면의 한 측면에 분할도흔이 있다. 다른 복합문암키와도 회흑색을 띤 경질기와로 파손되었는데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다. 암키와의 현재 길이와 두께는 9.0cm, 2.3cm이다. 암키와의 표면에 우상문과 정격자문이 새겨졌는데, 한 측면과 이면에는 각각 분할도흔과 거친 포목흔적이 있다.

고려 복합문 암키와
고려 복합문 암키와

 

조선시대의 기와는 고려시대의 기와에 비하여 수량이 많고 다양하다. 조선시대의 수키와는 6례가 출토하였는데, 표면에 창해파문(滄海波文)과 복합문, 집선문(集線文)이 새겨졌고 무문양인 수키와도 출토하였다.

 

창해파문이 새겨진 수키와는 2례가 출토하였다. 창해파문수키와는 상단부와 하단부가 파손된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의 길이와 두께가 각각 9.5cm, 2.5cm가량이다. 이면과 한 측면에는 포목흔적과 안쪽에서 넣어진 분할흔적이 있다. 다른 수키와는 표면에 정연한 창해파문이 새겨져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8.0cm, 2.0cm가량이다. 이면에 거친 포목흔적이 있고 측면에는 안쪽에서 넣어진 분할흔적이 있다.

조선 창해파문 수키와
조선 창해파문 수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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