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연소 급제자 '이건창'의 생가
상태바
조선 최연소 급제자 '이건창'의 생가
  • 김민석 기자
  • 승인 2020.03.16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건창 생가(사진=CPN문화재TV)
이건창 생가(사진=CPN문화재TV)

 

이건창은 조선 최연소 과거 급제자로 고종 3(1866)에 최연소과거급제(15)로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너무 일찍 등과하였기 때문에 고종 7(1870) 19세에 이르러서야 승정원주서(注書:7)직에 벼슬을 받았다.

 

고종 11(1874) 때 동지사(冬至使:외교사절)의 서장관(書狀官:기록관)으로 발탁되어 청나라에 가서 그곳의 문장가 황각(黃珏장가양(張家驤서보(徐郙) 등과 교우하고, 이름을 떨쳤다.

 

이듬해 충청우도암행어사가 되어 충청감사 조병식(趙秉式)의 비행을 낱낱이 들쳐 내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아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고, 1년이 지나서 풀려났다. 공사(公事)에 성의를 다하다가 도리어 당국자의 미움을 사 귀양까지 간 뒤에는 벼슬에 뜻을 두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이 친서(親書)내가 그대를 알고 있으니 전과 같이 잘하라는 격려를 받고 고종 17(1880, 29)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서 관리들의 비행을 파헤치는가 하면, 흉년을 당한 농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식량문제 등 구휼에 힘썼다. 한편 세금을 감면하여 주기도 하여 백성들로부터 환심을 얻어 공()의 불망비가 각처에 세워졌다.

 

이건창의 생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으며, 199532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이 집이 지어진 시기는 정확하진 않으나 기둥이나 보 등의 치목수법(治木手法)으로 볼 때 1백여 년이 된 것으로 판단되며, 자연석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삼량(三樑) 가구로 몸 전체를 짠 전형적인 한옥의 구조로 되어있다.

 

이건창의 생가는 초가집이기 때문에 자주 관리를 해줘야 한다.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시비를 지원 받아 2년에 한번 마을에 볏짚을 위탁을 받아 초가지붕을 교체하는 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작년 2019년의 경우에는 태풍으로 인해 한번 더 군비로 교체를 했다고 한다.

 

취재팀 김민석 기자

kemenes@icp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