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 -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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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억 - 기와
  • 이경일
  • 승인 2020.04.0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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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향산 중턱의 사찰, 부여 미암사 출토 기와 3

조선의 수키와는 2점이 출토하였다. 한 수키와는 완형으로 유단식이다. 표면에 집선이 밀집되었는데 조선후기에 제작되었다. 두 측면에는 분할도흔이 있고 이면에 포목흔적이 있다. 흑색의 경질기와로 길이와 두께가 각각 35.0cm, 2.5cm인데, 수키와의 지름이 17.0cm가량이다. 창해파문수키와도 유단식으로 완형인데, 조선후기에 제작되었다. 창해파문은 약간 변형되었으며 정면과정에서 일부 지워졌다. 두 측면에 분할도흔이 있고 이면에 거친 포목흔적이 관찰되다. 길이와 두께가 각각 39.0cm, 2.1cm이고, 수키와의 지름이 17.5cm가량이다.

조선 집선문수키와
조선 집선문수키와
조선 창해파문수키와
조선 창해파문수키와

 

조선의 암키와는 1점이 수집되었다. 표면에 우상과 선조가 조합되어 새겨졌는데,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면에는 포목흔적과 분할도흔이 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현재 길이와 두께가 각각 12.0cm, 1.8cm이다.

조선 집선문암키와
조선 집선문암키와

 

근대의 기와는 1점이 출토하였다. 복합문수키와는 표면에 창해파문과 선조가 조합되었는데 근대에 제작되었다. 완형으로 무단식인데 비교적 소형에 속한다. 두 측면에는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도흔이 있고 이면에 거친 포목흔적이 관찰된다. 길이와 두께가 각각 27.5cm, 2.0cm인데 지름은 13.8cm가량이다.

근대 복합문암키와
근대 복합문암키와

 

부여 미암사에서 출토한 기와는 20여점으로 수막새와 암·수키와로 구분된다. 수막새는 8점이 수집되었는데 백제의 사비시기에 제작된 연화문수막새로 그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연판의 형상과 반전수법에 따라 원형돌기식과 삼각돌기식, 곡절소판식으로 구분되었는데, 미암사의 초창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미암사에서 수집한 백제의 수막새는 6세기중반에서 7세기초반까지 다양한 작례를 나타냈는데, 동형의 수막새가 부여의 능산리사지와 구아리사지, 정림사지와 군수리사지 및 금강사지에서 출토하여 미암사의 초창 및 당시의 사세(寺勢)를 짐작할 수 있다.

 

·수키와는 백제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과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기와가 함께 수집되어 미암사의 변천과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백제의 연화문수막새를 통하여 창건 당시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는데, 백제 이후의 미암사의 역사와 변천에 대해서는 암·수키와가 중요한 근거가 되어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수키와는 표면에 새겨진 고판문양과 이면의 포목흔적 및 측면의 분할도흔에 따라 기와의 제작시기와 특징을 살필 수 있기 때문에 기와의 연구는 물론 사찰의 시대적 변천을 살피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부여 미암사는 전술한 바와 같이 백제의 사비시기인 6세기 중반 경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과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1500여 년간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암사는 경내에 쌀 바위가 있고, 백제시대의 방형초석과 후대의 탑재, 여러 종류의 건축부재가 산재하고, 다양한 기와가 출토하여 그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이 높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법등이 오래 계속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마땅히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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