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도 등장한 풍기 영전사, 과거와 현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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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도 등장한 풍기 영전사, 과거와 현재를 말하다!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4.06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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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 영전사 대웅전 전경 (사진 =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풍기 영전사 대웅전 전경 (사진 =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풍기 영전사는 669년 의장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현재는 1993년부터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 중이며, 2001년 경북 유형문화재 제324호인 영주 영전사 석조여래입상을 보호 중이다.

 

그러나 풍기 영전사는 원래 있던 터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 삼국유사에 담긴 풍기 영전사

 

삼국유사에는 나라의 건국신화 뿐만 아니라 삼국의 야사(野史), 민간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삼국 모두 불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삼았기에 불교에 대한 비중도 상당히 높다.

 

사찰의 창건설화도 담겨져 있는데, 풍기 영전사의 이야기도 있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진정스님은 가난하게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살았으며, 출가를 하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염려되어 미루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를 눈치 채고 마지막 남은 쌀로 주먹밥을 짓고 봇짐을 싸주며  진정스님에게 출가를 권했다고 한다.

 

진정스님은 의상대사의 문하에 출가했고, 3년 뒤 어머니의 부고를 접한다. 진정은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7일간 선정에 들었다고 한다이를 지켜본 의상대사는 진정의 마음을 알고 추동(錐洞)’이라는 곳에 제자 3천 여명을 데리고 초막을 지었다.

 

그 초막 안에서 진정의 어머니를 위해 90일간 화엄경을 강설했고, 이를 마치자 진정의 꿈에 어머니가 현몽해 이미 하늘에서 환생했다고 알려줬다고 한다. 당시의 화엄경 강설을 정리한 추동기두 권은 의상대사의 제자이자 진정의 문인이었던 지통 스님이 펴냈다고 전해진다.

 

추동이 과거 영전사가 세워진 곳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추동의 위치는 풍기에서 비로사로 올라가는 길목의 금선지라는 댐 맞은편 산비탈로 욱금리 영전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영전사는 창건 이후부터 고려시대까지 풍기의 대표사찰로 운영되어 오다가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인해 폐사가 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영주 영전사 석조여래입상' (사진 = CPN문화재TV)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영주 영전사 석조여래입상' (사진 = CPN문화재TV)

 

- 많은 유물들, 이전과정에서 많이 소실돼

 

영전사는 1924년 해운선사가 중창했으며, 1936년에 경남불찰통도사포교당으로 등록하고 이듬해 조선총독부 관보에 기록된다. 현대의 영전사로서 다시 일어선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추동에서 터를 잡고 있었다.

 

영전사 주지 해득스님은 연령대가 있으시는 신도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영전사는 욱금동 쪽에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입상도 1921년에 추동이라 추정되는 욱금동 영전마을에서 발견된 것이다. 현재 야외에 있는 석불 및 석물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1949년 정부의 소거령으로 인해 현위치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유물들이 소실되기도 했으며, 옮겨오던 석불입상의 광배는 유실되었고 대좌도 후반부가 떨어져 나갔다. 이곳에서 1989년부터 계속 주지로 부임하면서 많은 유물들을 보았으나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현재 문화재전문위원에게 조사를 맡겨서 정확한 진위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풍기 영전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사진 = CPN문화재TV)
풍기 영전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사진 = CPN문화재TV)

 

- 100년 이상 동고동락한 두 불상

 

영전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입상과 비지정문화재이나 그 가치를 숨기고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석불입상이 땅에서 발견된 것은 1921년이었으며, 신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관음보살좌상 역시 석불입상이 있을 때부터 함께 법당에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아 적어도 두 불상은 100년 가까이 영전사를 보호하며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인 것이다. 석불입상은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띄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유물의 기록을 통해 1647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조선 중기에는 보기 힘든 착의 묘사로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가치를 지녀서인 것일까.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석불입상이 문화재로 지정되던 해인 2001년에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이듬해에 경찰에 의해 돌려받게 된다. 다행히도 복장 유물이 훼손된 상황은 아니었으며, 2002년 개금 불사를 진행하고 현재는 봉안되어 있다.

 

영전사 외부에 있는 석조 유물들 (사진 = CPN문화재TV)
영전사 외부에 있는 석조 유물들 (사진 = CPN문화재TV)

 

아직도 영전사의 터에는 많은 유물이 땅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영전사로 이전한 유물들 역시 문화재 전문가들의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목조관음보살 역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가 CPN문화재TV의 취재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도 숨겨진 문화재의 보고인 영전사를 놀라워하고 있다.

 

현재 영전사는 아직 본래의 모습의 10%도 드러내지 않은 셈이다. 정확하고 분석적인 조사를 통해 과거의 영전사부터 현재의 영전사까지를 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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