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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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 김민석 기자
  • 승인 2020.04.07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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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문화가 섞여 있는 사천왕상
보경사 사천왕상(사진=CPN문화재TV)
보경사 사천왕상(사진=CPN문화재TV)

 

 

사천왕(四天王)은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수호신들을 말한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사천왕상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창, , 금강저 등의 무기를 들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사찰의 입구에 배치된다.

 

각각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그리고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이들은 국내의 사찰에서도 발견된다.

 

동아시아에서 사천왕상은 불교 사찰의 전각 내부나 입구, 탑 등을 지키는 역할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한반도에서 사천왕은 682년 세워진 경주 감은사의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西 三層石塔 舍利莊嚴具)에서부터 확인된다.

 

대체 이 사천왕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놀랍게도 사천왕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천왕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헬레니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헬레니즘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인 기원전 334년부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한 기원전 30년까지의 기간으로, 그리스의 전반적인 문화 전체를 따르는 시기를 말한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후에 그리스 문화권은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해당하는 인도의 간다라 지역에 도달했고 이 지역의 토착 문화와 그리스 문화는 서로 뒤섞이게 된다. 이렇게 동방의 종교전통과 서방의 고전미술 전통이 섞인 것이 바로 간다라 미술이라는 것이다.

 

 

보경사 증장천왕(사진=CPN문화재TV)
보경사 증장천왕(사진=CPN문화재TV)

 

 

간다라 미술의 주제의 대부분은 인도의 불교와 관련된 것이나, 그 불교미술의 표현들은 대부분이 서방의 지중해 문명의 양식이었다. 따라서 간다라지역은 동서문화의 교류라는 주제를 다루는 학술·연구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곳이다.

 

그리스와 융합한 만큼 간다라 미술에는 다양한 그리스의 신들과 인물이 나오게 된다. 이들은 간다라 양식이 퍼지면서 조금씩 변모하게 된다. 몇몇 신은 불교 건축물의 장식에서 나오기도 하고, 각 영웅이나 신들의 성질을 가져온 예술품들이 나온다. 여기서 여러 신들의 성질이 복합적으로 섞이거나 하기도 한다.

 

 

보경사 다문천왕(사진=CPN문화재TV)
보경사 다문천왕(사진=CPN문화재TV)

 

 

이 과정에서 부처의 호위무사로 헤라클레스가 나오게 된다. 그리스 신들의 왕인 제우스와 인간인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는 현대에 와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다. 헤라클레스의 외형은 주로 그가 가진 무지막지한 괴력과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고 그가 그 가죽을 뒤집어 쓰고 곤봉을 휘두르고 다녔기 때문에,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쓰고 곤봉을 휘두르는 역사(力士)의 모습으로 주로 표현된다.

 

여기서 헤라클레스가 간다라 지역의 인도 문화와 결합하면서 들고 다니던 곤봉이 금강저(金剛杵)로 표현되거나 쓰고 있던 사자가죽은 머리나 팔뚝을 물고 있는 사자로 변형되기도 한다. 따라서 헤라클레스는 석가모니를 호위하는 바즈라파니가 된다. 이 문화가 동쪽으로 퍼지면서 금강역사가 되기도 하고 사천왕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는 헤라클레스 차림으로 제우스의 벼락을 든 부처님의 수행원이라는 설명이 붙은 바즈라파니 부조가 있다. 헤라클레스가 든 저 벼락모양의 몽둥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면 바즈라가 된다. 그리고 그 바즈라가 우리의 불교에서는 금강저로 해석이 된다. 금강저는 불교에서의 의식 도구로 번뇌를 분쇄하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이다.

 

, 헤라클레스가 들고 있는 벼락 모양의 몽둥이가 금강저가 되어, 현재 우리의 사찰에 있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이 된 것이다.

 

 

보경사 광목천왕(사진=CPN문화재TV)
보경사 광목천왕(사진=CPN문화재TV)

 

 

이렇게 간다라의 불교미술에 융합된 헤라클레스는 동쪽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란, 인도의 신들과 결합된 모습으로 전해지게 되며, 이것이 현재의 금강역사, 사천왕 등의 모습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러한 헤라클레스의 흔적은 봉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봉은사의 정문인 진여문의 사천왕상에는 배와 어깨장식에 사자가 표현되어 있다.

 

취재팀 김민석 기자

kimminseok@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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