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사’ 도심 속, 태고의 느낌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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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도심 속, 태고의 느낌을 말하다.
  • 이경일
  • 승인 2020.04.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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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산 자락의 기림사.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를 본떠 만든 사찰이라고 한다. 나와 인연이 참 깊다.

 

처음 기림사에 발을 들인 것은 아마도 20여전 년일 것이다. 물이 참 좋은 사찰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창창한 물, 즉 습기 때문에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반가상이 습윤 침착에 의한 피해를 봤다. 건칠보살반가상(慶州 祇林寺 乾漆菩薩半跏像), 즉 건칠불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든 뒤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바른 다음 속을 빼낸 불상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남아 있는 예가 매우 적어 이 불상의 가치가 크다.

건칠보살반가상(사진=CPN문화재TV)
건칠보살반가상(사진=CPN문화재TV)

 

보살상의 대좌에 홍치(弘治) 14(연산군 7, 1501)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 사실이 아주 분명하며 유례가 드문 건칠불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이 귀중한 불상이 습기로 불룩불룩 얼굴이 내밀었었다. 누군가 그런 불상에 대하여 제보를 했고, 나는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기림사를 방문했다.

 

아직도 생생한 처음 느낌은 마치 수려한 태고의 밀림 어느 곳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급수봉다(給水奉茶)로 읽혀지는 벽화는 차 문화의 꽃이 이 기림사로부터 활짝 피웠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적광전 역시 단아하고 고풍스러웠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인위적인 흔적 없이 자연스러운 밀림 한 곳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랬던 사찰이 20여년 만에 와보니 엄청 실망스럽다. 우선 일주문을 지나 사찰을 드나드는 정문에 흡사 괴물처럼 화장실이 떡하고 버티고 있질 않은가. 아마도 시에서 등산객을 위해 지어놓은 모양인데, 문화재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참 난감하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이랴. 당시 다시 지어놓은 박물관은 이미 개점 폐업 상태고, 막 정문을 벗어나 왼편의 공양간은 전통적 요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멘트 건물에 군데군데 벗겨지고, 볼썽사납기 그지없었다. 기능에만 충실하게 만들어진 공양간.

 

뿐만 아니었다. 대적광전 주변으로도 단 한 번도 손을 본 흔적이 없었다. 뒤를 따르던 영송스님은 그래도 제가 오고 나서 동백도 사다 심고, 마당의 화원을 가꾸고 있다는 말로 다소 면구한 상황을 설명했다. , 아쉽다. 누가 거하느냐에 따라서 금빛으로 찰랑거리는가 하면 이처럼 폐허처럼 변하기까지 하는 구나 싶었다.

 

기림사의 대적광전은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이며, 그 아름다움이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다. 단청 모사도를 남겨놓았다고 들었는데 단청은 여전히 다 벗겨진 상태였다. “사실 기림사는 이 대적광전 주변이 가장 소중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한마디 했을 때 영송스님은 맞습니다. 다양한 전설과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죠, 거북이 형상으로 이 공간을 조성했다는데, 오죽 답답하면 제가 이 거북이 구조물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습니다.” 하면서 혀를 찾다. 어디선가 이질감 가득한 거북이 상이 전각을 호위하고 있었다.

 

영송스님의 애틋함처럼, 기림사는 첫걸음부터 많은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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