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 년의 풍상을 헤쳐 온 고구려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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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 년의 풍상을 헤쳐 온 고구려 성벽
  • 이경일
  • 승인 2020.04.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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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漣川 瓠蘆古壘)

호로고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효종 7(1656)에 편찬된 동국여지도이며, 이 책에는 호로고루가 삼국시대의 유적임이 명시되어 있다.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에 접한 현무암 천연절벽의 수직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평양지역에서 출발한 고구려군이 백제 수도인 한성으로 진격하기 위한 최단코스는 평양에서 개성을 거쳐 문산 방면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우회하여 장단을 지나 호로고루 앞의 여울목을 건너 의정부방면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호로고루가 있는 고랑포일대의 임진강은 삼국사기에도 여러 차례의 전투기사가 등장할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지(사진=문화재청)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지(사진=문화재청)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과 같이 생겼다하여 호로고루라고 불린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호로)'''을 뜻하는 '구루'가 합쳐져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 지역은 북쪽의 고구려가 남진 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인 그곳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곳에 고구려군은 성을 쌓았다. 그야말로 철옹성으로 1500여 년의 풍상을 헤쳐 온 고구려 성벽이다.

 

호로고루 일대는 삼국시기부터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임진강을 건너면 남쪽은 쉽게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시대 때도 개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고,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주력 전차부대가 이곳에서 강을 건넜다. 6.25 전쟁전 까지 개성과 서울로 오가는 물자가 이곳에 모였으며, 개성에서 자전거로 한 시간이면 닿았다.

 

성벽의 전체둘레는 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재었을때 약 400m이고, 그중 남벽은 161.9m, 북벽은 146m이며, 동벽은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93m이고 성내부는 전체적으로 해발 22m, 성벽 최정상부는 30m 정도이다. 성벽 중 가장 높은 동벽 정상부와 서쪽 끝부분에는 장대(將臺)가 설치되었으며, 성으로 진입하는 문지는 동벽 남쪽을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천호로고루는 연천당포성, 연천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으로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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