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花匠, 종이로 꽃을 피워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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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花匠, 종이로 꽃을 피워내다 3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4.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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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 마지막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순조 지당판 재현 (사진 =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순조 지당판 재현 (사진 = 문화재청)

 

지화는 궁중에서부터 민가까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곁에서 피어났다. 궁중지화, 불교지화, 무속지화, 민간지화 등 여러 방면에서 지화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도 늘고 있다.

 

연회, 잔치 등 경사스러운 분위기에서 지화는 화려함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성대한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머리에 지화를 꽂았으며, 장소에는 알록달록하고 크고 작은 장식꽃인 준화(樽花)가 우리를 반겼다. 잔치에는 음식이 늘 함께였는데, 잔치상 옆에는 음식상을 장식하는 상화(床花)도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이동순 주무관은 궁중에 쓰인 가화는 당시에 남겨진 그림으로나마 화려하고 섬세했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봉수당진찬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찬 장면이 그려진 것이다. 화면 위쪽을 보면 거대한 차일을 친 봉수당 앞뜰에 온갖 화려한 가화로 치장되어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비단, 모시 등 궁중 연회 및 의례 목적으로 제작한 가화를 통틀어 궁중채화로 불리며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됐다.

 

불교식 장례에서 지화를 태워 공양하는 모습 (사진 = CPN문화재TV)
불교식 장례에서 지화를 태워 공양하는 모습 (사진 = CPN문화재TV)

 

불교문화권에서도 지화는 필수적으로 옆에 있었다. 수륙재, 연등회 같은 큰 행사에서는 지화가 없으면 진행이 힘들 정도로 큰 축으로 등장했다. 특히 살생을 지양하는 종교인 불교에서는 생화대신 손으로 만든 지화를 불태움으로서 부처에게 공양했다. 문화재로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3지화장의 보유자인 석용스님이 이어가고 있다.

 

주로 화려함보다는 연한 색의 꽃이 주를 이루며, 그 중에서도 불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연꽃이 다수다. 연꽃잎을 하나하나를 염색하고, 재단했으며, 마지막에는 욕심 없이 태워냄으로서 수행의 완성으로도 여겼다.

 

시도무형문화재 제25호 '지화장' 무속지화 재현 (사진 = 문화재청)
시도무형문화재 제25호 '지화장' 무속지화 재현 (사진 = 문화재청)

 

무속에서도 지화는 그 자리를 지켰다. 주로 꽃을 피운다는 말을 사용했으며, 굿날이 잡히면 무당들이 모여앉아 꽃을 피웠다. 무속에서의 지화는 굿하는 사람의 소망을 담아내는 그릇이었으며, 굿이 끝난 후 불에 태움으로서 하늘에 소원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주로 무당의 화려한 옷과 함께 해서 꽃의 색상으로는 진한 붉은빛이나 진분홍빛이 많다. 주로 애기씨 동자꽃, 액막이배, 성주꽃, 팔선녀 등 신을 상징하는 꽃을 제작해 그 종류는 무려 18종에 달한다.

 

문화재로서는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25지화장김은옥 보유자가 무속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무속지화 제작을 4대째 진행 중이다.

 

지화는 향기 없는 꽃이지만 우리의 삶의 향기와 마음을 담고 있는 문화다. 지화에 녹아있는 문화재적 가치, 기술성, 예술성을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해 활용해나가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충분히 연구될 수 있는 지화가 일상 생활에 친밀하게 녹여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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