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 -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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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억 - 기와
  • 이경일
  • 승인 2020.04.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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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천장사와 옥천암터 출토 기와 2

고려시대의 수키와는 1(사진 8, 8-1)가 출토하였는데 표면에는 깃과 같은 우상문(羽狀文)이 새겨졌다. 표면에 우상문이 정연하게 새겨졌는데 조정과정에서 일부가 지워졌다. 수키와는 상단부가 파손되었는데 그 길이와 두께가 각각 22cm, 2.5cm가량이다. 회갈색의 경질기와로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면에 포목흔적과 내측에서 넣어진 와도의 분할흔적이 있고 하단부가 얇게 조정되었다.

고려 우상문수키와
고려 우상문수키와

 

고려시대의 암키와는 3례가 출토하였는데 표면에 격자문과 우상문이 새겨졌다. 격자문암키와(사진 9, 9-1)는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는데 길이와 두께가 각각 19.0cm. 2.4cm가량인 파손품이다. 회갈색의 경질기와로 표면에 정격자가 새겨졌고 이면은 포목흔적이 선명한데 하단부가 얇게 조정되었다.

고려 격자문암키와
고려 격자문암키와

 

우상문이 새겨진 고려시대의 암키와는 2례가 출토하였다. 우상문암키와는 표면에 문양이 정연하게 새겨졌는데 길이와 두께가 각각 31.0cm, 2.8cm인 큰 기와편이다. 회갈색의 경질기와로 이면에 포목흔적과 점토판의 재단흔적이 있고 하단부가 얇게 조정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우상문암키와는 문양이 밀집되었는데 고려 후기의 작례(作例)를 보이고 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길이와 두께가 각각 17.0cm, 2.2cm인데, 이면에 거친 포목흔적이 남아 있다.

고려 우상문암키와
고려 우상문암키와
고려 우상문암키와
고려 우상문암키와

 

조선시대의 기와는 고려시대의 기와에 비하여 수량이 많고 다양하다. 수키와는 4례가 출토하였는데 표면에 선조문과 창해파문(滄海波文), 그리고 복합문과 집선문(集線文)이 새겨졌다.

 

선조문이 새겨진 수키와는 1례가 출토하였다. 상단부가 파손된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길이가 34.0cm로 비교적 크고 긴 편인데 두께는 2.4cm가량이다. 이면과 측면에는 선명한 포목흔적과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흔적이 있다. 그런데 선조문이 새겨진 수키와는 조선시대의 고판문양으로 매우 드문 편인데 조선 초기의 작례를 보이고 있다.

조선 선조문수키와
조선 선조문수키와

 

창해파문이 새겨진 수키와는 언강과 미구가 있는 유단식(有段式)으로 조선 전기에 제작되었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길이와 두께가 각각 16.0cm, 2.6cm인데, 미구의 길이가 1.5cm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이면에 포목흔적이 있고 측면에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창해파무수키와
조선 창해파무수키와

 

복합문이 새겨진 수키와(사진 14, 14-1)1례가 출토하였는데 조선 중기에 성행한 기와류이다. 회흑색의 경질기와로 표면에 창해파문과 짧은 사선(斜線)이 복합되었다. 기와의 길이와 두께가 각각 16.0cm, 2.2cm인데 미구는 짧은 편이다. 이면과 측면에 포목흔적과 분할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집선문수키와
조선 집선문수키와

 

집선문이 새겨진 수키와는 수량이 많은 편인데,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다. 소성온도가 높은 유단식의 회흑색의 경질기와이다. 기와의 길이와 두께가 각각 35.0cm, 2.0cm이고 미구의 길이가 3.0cm가량이다. 표면에 새겨진 집선문은 밀집되었는데 창해파문이 집선으로 변형된 모습이다. 이면에 포목흔적이 있고 측면에 내측에서 넣어진 분할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복합문수키와
조선 복합문수키와

글.사진 김성구 전국립경주박물관장

제천 천장사와 옥천암터 출토 기와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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