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어서 우리를 지켜주는 문무왕의 무덤, 문무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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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되어서 우리를 지켜주는 문무왕의 무덤, 문무대왕릉
  • 김민석 기자
  • 승인 2020.05.02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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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사진=CPN문화재TV)
문무대왕릉(사진=CPN문화재TV)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시 대종천 봉길해수욕장에 인접한 동해 바다에는 작은 바위섬이 있다. 사적 제158호인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이다.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불린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낸 신라의 왕으로, 그가 죽기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동해에서 치러졌다. 문무왕의 유언은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들을 막겠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나는 세간의 영화를 싫어한지 오래이며 죽은 후에는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이 능은 해변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있는 자연바위에 조성되었다. 평면에서 본 문무대왕릉은 동서남북 4방향으로 수로가 나 있다. 이 수로들은 중앙의 공간을 잔잔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바닷물이 동쪽의 수로를 통해 들어오고 서쪽의 수로로 빠져나간다. 이를 통해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수면이 잔잔하게 유지되게 만들어진 구조다. 이 수로와 내부 공간은 인위적으로 바위를 깎은 흔적이 있기 때문에 문무왕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문무대왕릉의 유명한 설화로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있다. <삼국유사> 2 기이 만파식적조와 <삼국사기> 32 잡지 제1 악조에 실려 있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신문왕의 꿈에 나타나서 신문왕에게 대나무를 선물했다.

 

그 대나무는 신기하게도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용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하여, 신문왕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이 피리를 불면 모두 해결되었다고 한다. 적이 침입할 때 이피를 불면, 적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날씨도 평안해진다. 이 피리가 곧 만파식적으로, 이후 효소왕대에 실례랑(失禮郞)이 다시 살아 돌아온 일로 인해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설화에는 삼국통일 이후,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과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에 가면 제를 올리거나 돗자리를 깐 무속인들이 자주 보인다. 문무대왕릉이 가진 의미 때문에 이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엄연한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벌이는 무속인들의 굿판은 문무대왕릉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큰 민폐다. 또한 곳곳에서 무속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들이 발견된다. 이곳은 만파식적의 호국정신의 설화가 깃든 곳이지 굿판을 벌이는 곳이 아니다. 문무대왕릉은 이런 곳이 아니다.

 

현재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경제활동은 침체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문무대왕릉을 찾는 것은 만파식적이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힘든 시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라 생각한다. 삼국유사에 적힌 모든 근심과 질병이 해결된다는 이야기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큰 의미를 가진다.

 

동해바다에. 우뚝 서 있는 문무대왕릉을 보며 굿판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재난을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취재팀 김민석 기자

kimminseok@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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