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서명을 거부한 늑약, 덕수궁 중명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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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서명을 거부한 늑약, 덕수궁 중명전의 기억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6.02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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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 도서관과 아픔 지닌 장소를 거쳐 전시관이 되다

 

덕수궁 중명전으로 가는 길의 표지판 (사진 = CPN문화재TV)
덕수궁 중명전으로 가는 길의 표지판 (사진 = CPN문화재TV)

 

흔히 덕수궁하면 떠오르는 범위는 궁궐 내부 전각들과 근대식으로 지어진 석조전 정도를 떠올리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입구인 대한문을 나서서 왼쪽 와플집의 작은 골목을 타고 올라가면 중명전 가는 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우리를 반긴다.

 

표지판을 따라 여러 골목을 거슬러 내부로 진입하면 현대식 벽돌 건물 한 채가 보인다. 바로 중명전으로 사적 제124덕수궁의 일부에 포함되는 장소다.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사전조사를 하지 않은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편이다.

 

1899년 미국인 다이의 설계로 지어졌으며 당시에는 수옥헌이라고 불렸다. 1906년부터 중명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재에 이른다.

 

중명전의 원래 용도는 대한제국 황실의 보고(寶庫)이자 도서관이었다. 그러다 1904년 덕수궁에 큰 화재가 발생한 뒤 고종이 사실상 거쳐했던 유서 깊은 장소였다. 안타깝게도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중명전은 교과서에서도 언급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다.

 

사적 제142호 '덕수궁' 의 중명전 전경 (사진 = CPN문화재TV)
사적 제142호 '덕수궁' 의 중명전 전경 (사진 = CPN문화재TV)

 

을사늑약은 1905, 을사오적(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이 일제에 외교권을 넘긴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끝까지 서명을 거부했음에도 진행된 늑약(勒約)이다.

 

원래 을사(1905)년에 성립된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을사조약이라는 단어였으나, 사실상 강제적으로 체결된 불법조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을사늑약으로 바꿔 사용되고 있다.

 

이 늑약은 사실상 대한제국이 일제에 합병당한 첫 단계로 기록된다. 많은 권리 중에서 가장 먼저 외교권을 뺏은 이유가 무엇일까. 흔히 범죄자가 사람을 살해할 때의 단계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제일 처음, 주변의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입부터 틀어막는다. 이 입을 틀어막는 것 자체가 나라에 비유하면 외교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발해서 고종의 명령을 받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은 헤이그로 향한다. 이 헤이그 특사의 파견 역시 중명전에서 이루어졌다. 세 사람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고 자주권을 주장했다. 슬프게도 이미 외교권이 뺏긴 뒤였고,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당시 유럽에서 그들의 외침은 통하지 않았다.

 

덕수궁 중명전 전시관 내부 중 을사늑약 재현 (사진 = 덕수궁관리소 제공)
덕수궁 중명전 전시관 내부 중 을사늑약 재현 (사진 = 덕수궁관리소 제공)

 

을사늑약이 진행된 지 불과 5년 후,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게 된다. 중명전은 일제강점기 시기 덕수궁을 축소시키면서 외국인에게 임대를 당한다. 1925년 내부 화재로 인해 원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개인의 소유건물이 되었고, 1983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된다.

 

중명전 현장 관리자는 중명전은 서울시 문화재에서 사적으로 포함된 특별한 경우다. 개인의 소유였던 것을 2006년 문화재청이 인수했다. 그 후 2008덕수궁에 포함시켰다. 별도의 승격이 아닌 덕수궁에 포함시킨 이유는 건립 용도가 덕수궁에 포함된 건물이었고, 현재 덕수궁의 범위는 일제강점기의 훼손으로 인해 축소된 상황으로 원래는 중명전까지 포함됐었기 때문이다. 사적이 된 후 2009년 복원사업을 통해 대한제국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중명전은 현재 대한제국과 을사늑약 등 한국의 근현대사가 담긴 전시관으로 우리의 앞에 서 있다. 전시관 내부는 덕수궁과의 연관성, 을사늑약 체결 현장, 헤이그 특사를 보내게 된 과정 등을 잘 알 수 있도록 설명 되어 있다.

 

덕수궁의 진정한 관람은 내궁과 석조전뿐만 아니라 중명전까지 모두 보아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는 코로나 19로 인해 관람이 중단된 상황이지만, 다시 열게 된다면 꼭 들려야하는 우리의 역사적 장소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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