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보호받은 왕의 초상화 4점, 문화재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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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보호받은 왕의 초상화 4점, 문화재로 등록!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6.2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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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진전 봉안 어진' 중 1900년도에 본따 그린 '태조어진' (사진 = 문화재청)
'근대기 진전 봉안 어진' 중 1900년도에 본따 그린 '태조어진' (사진 = 문화재청)

 

근대기 진전 봉안 어진4점이 문화재로 등록됐다. 안타깝게도 4점 모두 반은 훼손되어 절반만 남아있다.

 

근대기 진전 봉안 어진 조선왕조의 정통성과 권위를 표상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등록된 것은 태조어진(홍룡포본원종어진·순조어진·순종어진 총 44점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소개(적의 공습에 대비해 분산시킴)하였으며 전쟁 직후 보관창고 화재로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용안의 일부와 곤룡포·신발·용상·채전(무늬가 있는 바닥 카펫) 등의 색채와 문양 등이 잘 보존되어 역사·예술·학술 면에서 가치가 크다.

 

먼저, 태조어진(홍룡포본)함경남도 영흥의 준원전에 봉안되어 있던 태조어진을 1900년도에 본따 그린 것이다. 조선 초기 중년기의 태조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희소하다.

 

원종어진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추존왕)의 어진으로서 대군·군만 용할 수 있었던 백택(상상의 동물)이 달린 흑단령(둥근 검은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17세기 초반의 신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특이하다.

 

'근대기 진전 봉안 어진' 중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순종어진 (사진 = 문화재청)
'근대기 진전 봉안 어진' 중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순종어진 (사진 = 문화재청)

 

순조어진은 절반 이상이 불에 타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나, 표제가 남아있어 순조어진임을 알 수 있다.

 

순종어진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되었지만 조선왕조의 제작 전통에 따라 진전(역대 임금과 왕비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 봉안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 제작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귀한 자료다.

 

대부분의 어진이 훼손된 상황에서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왕실의 전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되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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