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승려 교육을 위한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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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려 교육을 위한 교과서
  • 이경일
  • 승인 2020.07.0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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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62호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조선시대 강원에서 학습교재로 널리 사용된 책이 있다. 보물 제1662호 대혜보각선사서는 특히 현재 유일의 고려본으로 조선 사찰본의 모본이 되었던 귀중한 판본이기도 하다.

 

대혜보각선사서는 송나라의 선종(禪宗) 승려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당시의 이름난 사대부들, 제자 및 신도 총 42명과 주고받은 62편의 편지글을 모은 것이다. ‘편지라는 의미를 가진 ()’자를 써서 대혜서(大慧書)’, ‘대혜서장(大慧書狀)’, ‘서장(書狀)’이라고 약칭하고, 더욱 간단하게()’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물 제1662호 대혜보각선사서(사진=문화재청)
보물 제1662호 대혜보각선사서(사진=문화재청)

 

종고의 법문을 모은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전체 30)’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권25~30을 따로 뽑아 별도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를 하듯, 조선시대 승려들도 이력(履歷)’이라고 부르는 단계별 교육과정이 있었다. 이력은 사미과(沙彌科)-사집과(四集科)-사교과(四敎科)-대교과(大敎科)4단계이다.

 

중등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사집과는 당나라 승려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고려 승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종밀의 저서를 요약하고 해설을 붙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송나라 승려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의 법문을 모은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그리고 대혜보각선사서가 핵심 교과서였다. 조선시대에 대혜보각선사서는 승려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는 책이었던 것이다.

대혜보각선사서(사진=문화재청)
대혜보각선사서(사진=문화재청)

 

종고는 선승(禪僧)이었지만 현실 참여적인 성향이 강해서 당대의 이름난 사대부들과 적극적으로 교리를 문답하였다고 한다. 특히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1130~1200)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혜보각선사서는 편지글이기는 하지만, 선사상(禪思想)의 핵심을 뽑아내어 토론하거나 가르치는 내용이라서 후대에 승려와 학자, 일반 신도 사이에 널리 읽혔다. 주된 내용은 당시 선종 종파 중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던 조동종(曹洞宗)의 묵조선(黙照禪)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을 주장하는 것으로, 종고는 묵조선을 소극적인 선풍(禪風)이라고 비판하고, 간화선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의 길이라고 역설한다. 이후 간화선은 주류 선풍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한국 선종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혜보각선사서는 종고가 입적한 직후인 건도(乾道) 2(1166) 8,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중국 항주의 경산 묘희사(妙喜寺)에서 제자 혜연(慧然)과 거사(居士) 황문창(黃文昌)에 의해 처음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대체로 고려 신종(神宗, 1198~1204) 연간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 제1662대혜보각선사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이자 이후 제작·유포된 여러 판본의 모본(母本)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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