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산업의 중심지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고통을 묵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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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산업의 중심지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 고통을 묵살하다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7.06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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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의 흔적을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시킨 일본, 사과 없이 승승장구 (2)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 옛 목형장 전경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 옛 목형장 전경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 철강 · 조선 · 석탄산업에 등재된 23개의 항목 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뢰, 군함 생산지의 중심지였던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에서 발행한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 -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유산과 강제노동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미쓰비시 그룹은 1873년 이와사키 야타로가 세운 작은 상회였으나 군국주의 성장에 힘입어 급속도로 군수재벌로 성장한다. 그 중에서도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전함의 자랑이라 불렸던 무사시를 비롯해 진주만 기습에 사용한 어뢰가 제작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에 대한 책임을 전혀 물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미쓰비시항공, 미쓰비시전자, 기린맥주, 아사히글라스, 니콘 등 수많은 기업들을 양성해 일본 3대 재벌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1930년대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의 풍경을 그린 엽서 (사진 =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1930년대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의 풍경을 그린 엽서 (사진 =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 끌려간 6,000여명, 살아남은 사람은 20%에 불과

 

일제강점 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8년 발간한 내 몸에 새겨진 8에서 생존자인 김한수 할아버지의 증언이 실려 있다. 김한수 할아버지는 1944년 강제로 나가사키조선소에 동원되었고, 도금공장에서 12시간 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특히, 발가락이 부러져 치료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해주지 않아 여전히 발가락 한쪽이 크게 부어있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 폭심지에서 3.2km 지점에서 강제 노동 중 피폭 당했지만 본인은 철판이 근처에 있어서 목숨은 건졌으나 함께한 조선인 동료들은 거의 80%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여됐을 때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사망하거나 피폭되었고, 알려진 피해자규모만 무려 3만 명에 달한다.

 

- 강제노역 안내판에 일부만 언급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에 건설된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병기제작소에 스미요시 터널 공장 유적이 남아있다. 일본 정부가 자체적으로 강제노역을 인정하는 안내판을 세운 것이 아닌, 재일교포피해자들과 양심 있는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겨우 세워졌다.

 

안내판에는 거주자의 다수는 조선인노동자였다. 그 중에는 강제로 동원된 사람도 있으며, 터널 뚫는 공사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였던 나가사키형무소 우라카미형무지소 유적지에도 외국인 원폭피해자들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에는 강제징용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일본 메이지 유신의 성공과 전쟁으로 인한 자국민의 피폭 피해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도쿄에서 진행된 미쓰비시와 일본정부의 배상을 요구하는 '금요집회', 맨 오른쪽 양금덕 피해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 경기도의회)
지난 1월 도쿄에서 진행된 미쓰비시와 일본정부의 배상을 요구하는 '금요집회', 맨 오른쪽 양금덕 피해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 경기도의회)

 

2018년 한국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된 양금덕 피해자 등 원고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럼에도 미쓰비시중공업은 19개월째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197월 보복조치로 한국 반도체사업 핵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에 나섰고, 이는 국내의 일본불매운동으로 크게 번졌다. 현재까지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그룹은 이에 대한 어떠한 배상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모르쇠하고 있다.

 

일본이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는 와중에 김중곤 피해자(20191), 이동련 피해자(20205)가 사망했으며, 이들은 끝내 어떠한 사과조차도 듣지 못했다. 지난 25일부터 코로나 19로 임시 중단됐었던 미쓰비시 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금요집회가 재개됐다.

 

 

전범의 흔적을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시킨 일본, 사과 없이 승승장구 (3)’으로 계속됩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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