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배상금으로 건설된 야하타제철소, 무자비한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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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배상금으로 건설된 야하타제철소, 무자비한 학대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7.07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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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의 흔적을 산업화 유산으로 등재시킨 일본, 사과 없이 승승장구 (3)

 

청일전쟁을 묘사한 '조선안성도격전도' 다색판화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청일전쟁을 묘사한 '조선안성도격전도' 다색판화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1894,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꿔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지배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청일전쟁이다. 메이지유신의 성공으로 막대해진 일본은 청에게서 승리를 거두어 본격적으로 조선침략의 당위성을 마련하게 된다.

 

청과 일본의 전쟁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전투는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다. 일본은 조선 왕궁을 점령하고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는 등 본격적인 야욕을 드러낸다. 청은 청일전쟁의 패배로 일본에게 2억 량을 지불했는데, 이는 일본의 4년 치 국가예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일본은 배상금의 80%를 군비 확장에 사용했고, 나머지 20%를 바로 야하타제철소의 건설과 철도·전기·제철 등의 전쟁 사업에 활용되었다.

 

- 일본 철강 생산의 90%를 차지, 노동자들의 인권은?

 

1901년부터 문을 연 관영 야하타제철소는 일본 중공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특히, 1906년 일본 국내 철강 생산의 90%를 차지했으며, 철광석은 중국의 다예광산에서 싸게 수입했다. 1910년대는 동양 최대 제철공장으로 성장한다.

 

이에 비해 노동자들의 인권은 처참했다. 하루 12시간 2교대에 임금도 턱없이 부족했다. 때때로 화재와 가스 폭발 사고로 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1920년 두 번의 파업 끝에 제대로 된 노동권을 쟁취했다.

 

이도 얼마 가지 못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침략이 가속화됐다. ‘전체주의를 강조하며 노동운동은 다시 탄압되었고, 자국민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도 강제징용을 통해 노동력을 끌어오기 시작한다.

 

야하타제철소 구 본사무소 (사진 = 기타큐슈 시)
야하타제철소 구 본사무소 (사진 = 기타큐슈 시)

 

- 1,2000명의 피해자들, 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인원은 12명에 불과

 

야하타제철소가 포함된 일본제철은 조선에서만 제철공장에 4,000, 항운에 4,000, 탄광에 4,000명 총 1,2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강제동원 했다. 중국의 다예광산을 아예 점령해서 중국인 1,000여명, 연합군 포로 2,000여명 등이 강제로 노동을 했다.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로 노동을 한 김규수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1943년 군산에서 야하타제철소로 끌려갔으며, 도착할 때까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조차도 몰랐다. 12교대로 근무했고, 외출과 개인행동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그 때 나이가 17살이었는데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었고, 월급에 대한 설명조차도 듣지 못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친구와 도주를 감행한 적이 있는데 실패해서 수일 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규수 피해자를 비롯해 살아남은 한국인 피해자 12명은 신일철주금(일본제철의 후계회사)2005년부터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원고 6명이 사망했으며, 3명도 연로해 진술이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분포 현황 (사진 =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분포 현황 (사진 =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며, 한 국가나 국민의 전유물이 아닌, 전 인류가 소중히 보호해야 할 유산이다.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잘 물려주어야 하는 유산인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등재 가치에는 그 어디에도 일본의 침략전쟁, 식민 지배, 강제징용 등에 대한 부정적인 역사는 어디에도 없다.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한국인들을 비롯해 타국민이 강제로 노역을 했고, 이에 대한 피해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 건립 등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5. 개관을 앞둔 정보센터에는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왜곡된 역사가 기록되고 알려지고 있다.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는 일본 정부의 태도. 우리나라 정부도 더 이상 물러서지 말고 강하게 대처해야할 때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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