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을 관리한 ‘경리청과 상창’터, 발굴 뒤 드러나게 될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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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을 관리한 ‘경리청과 상창’터, 발굴 뒤 드러나게 될 비밀은?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8.04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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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79호 '북한산성'의 성벽 (사진 = 문화재청)
사적 제479호 '북한산성'의 성벽 (사진 = 문화재청)

 

사적 제479호 북한산성 내부의 경리청과 상창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된다.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2020년 매장문화재 긴급발굴조사 공모사업에 선정된 결과다.

 

‘2020년 매장문화재 긴급발굴조사 공모사업은 수해와 사태 등으로부터 보호관리를 위해 정비가 필요한 매장문화재 조사에 국비 100%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번에 선정된 경리청과 상창터는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산성 내 관청 건물로는 그 터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유적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오는 10월부터 12월까지 경리청과 상창3,904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국가 또는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 신청 여부를 결정한다.

 

한편, 경리청은 북한산성 및 행궁에 대한 실질적 관리와 운영을 위해 1712(숙종 38)에 설치한 관청으로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에 사용하기 위한 보미(保米)를 상창에 보관하는 등 산성 내 가장 핵심적 부속시설로 알려져 있다.

 

1894~1902년 사이로 추정되는 북한산성 경리청상창 (사진 = 고양시청)
1894~1902년 사이로 추정되는 북한산성 경리청상창 (사진 = 고양시청)

 

그러나 1747(영조 23) 군영 체제가 재정비되면서 총융청에 부속됐다가 1891(고종 28)에 수도 한양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 북한산성 총융청에 부속된 경리청을 분리해 다시 설치했다. 그러다 3년 뒤인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군제가 신식으로 개편되면서 결국 폐지됐으며, 이후 20세기 초반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리청과 상창터는 사적 제479호 북한산성 행궁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현재 육안으로만 보아도 건물의 축대와 여러 기의 초석이 확인된다. 그러나 매년 집중 호우로 인한 토사 유입으로 유적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북한산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많은 등산객에 의한 추가적 훼손도 우려되어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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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峯 2020-08-05 04:40:47
좋은 뉴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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