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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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 관리자
  • 승인 2009.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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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는 서해 최북단의 섬이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까지 여객선으로 4시간, 서해의 풍랑을 이겨낸 자만이 백령도를 만날 수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섬이고 순환버스를 타면 섬을 쉽게 관광 할 수 있지만,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여행에는 여유 있는 일정이 필요하다.





▲ 백령도 두무진 형제바위


역사적으로 보면 백령도 중국과 교역의 중간 기점 역할을 했다. 신라 진성여왕(887~896)의 막내아들 아찬 양패(良貝)공이 당나라 사신으로 가던 중, 일행이 탄 배가 백령도에 이르니 갑자기 풍랑이 거세게 일어나 백령도에서 10여 일을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곳은 심청전의 주요 무대인 인당수가 있는 곳이다.

후삼국시대에는 당나라로 통하는 중요한 해상교통의 요지였기에 백령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해전이 벌어졌다. 고려 태조 때 명장이었던 유금필 장군이 곡도(백령도)로 유배를 당했다. 그는 유배 중에 대우도(大牛島)에 견훤이 침범하여 전세가 불리하자 백령도의 장정을 선발하여 적을 패주시켰다. 그 공로로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이 되어 후백제를 정벌, 멸망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유금필 장군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백령도는 유배의 땅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중국 원나라 때, 제나라사람을 백령도로 귀양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육지와 멀고 바다가 거칠어 유배지로는 이와같이 적합한 곳이 없었을 것이다.





▲ 백령도 두무진 선대바위


바닷길이 멀고 험하니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으뜸은 기암괴석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된다 하여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명승 제8호)이다. 두무진의 명칭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마치 머리털 같다고 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불린대서 기원한다고 한다. 기암괴석이 만들어 놓은 경관은 위대한 자연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1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 온 이대기(李大期)는 두무진의 선대바위를 보고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하니 반드시 보아야 할 명소이다.





▲ 백령도 콩돌해수욕장


콩돌해수욕장(천연기념물 제392호)은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 특색이 잘 드러나 있는 곳으로, 해안은 둥근 자갈로 구성되어 있다. 1만년이 넘는 오랜 세월 파도의 힘이 콩과 같은 모양의 자갈을 깔아 놓았다. 이 곳에선 파도가 칠 때 들리는 자갈 구르는 소리가 더 없이 청량하다. 주머니에 자갈 몇 개를 넣은 욕심이 들도록 탐스럽다. 관광객들이 자갈을 가져가는 일이 빈번해지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은 콩돌의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 백령도 사곶해수욕장


사곶해수욕장(천연기념물 제391호)은 세계에서 두 곳뿐인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4Km의 해수욕장은 길이도 길고 바닥은 조개껍질이 다져져서 단단하다. 실제 예전에는 비행장으로 이용되었으며 군수송기도 이착륙이 가능하다고 한다. 해수욕장을 자동차로 달리면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 상쾌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육지를 그리워하는 유배의 땅, 지금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고도(孤島),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울어진 땅. 군사적 긴장감이 도는 백령도에 평화의 계절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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