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홍씨 후손가에 전래된 「기사계첩 및 함」이 국보가 됐다. 문화재청은 22일 300년 넘게 왕실 하사품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보존된 기사계첩을 국보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국보 제334호로 지정된 「기사계첩 및 함」은 1719년(숙종 45년)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선례를 따라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으로,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궁중회화다.
행사는 1719년에 실시되었으나 계첩은 초상화를 그리는 데 시간이 걸려 1720년(숙종 46년)에 완성됐다. ‘기사계첩’은 기로신들에게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다. 현재까지 박물관과 개인 소장 5건 정도가 전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2017년도부터 실시한 보물 가치 재평가 작업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기사계첩이 2019년 국보 제325호로 지정되었으며, 이번 건이 두 번째 국보 지정이다.
이번에 지정된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이 쓴 계첩의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 사연 때 숙종이 지은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의 발문, 각 행사의 참여자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축시,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으로 구성되어 현재까지 알려진 다른 ‘기사계첩’과 구성이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사례에서는 볼 수 없는 ‘만퇴당장’, ‘전가보장’이라는 글씨가 수록되어 이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 중의 한 명이었던 홍만조에게 하사되어 풍산홍씨 후손가에 대대로 전승되어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 준다.
이 계첩은 내함(內函), 호갑(護匣, 싸개), 외궤(外櫃)로 이루어진 삼중의 보호장치 덕분에 300년이 넘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화첩을 먼저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후, 외궤에 넣는 방식으로,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왕실 하사품으로서 일괄로 갖추어진 매우 희소한 사례다.
문화재청은 “▲ 숙종의 기로소 입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후에 고종(高宗)이 기로소에 입소할 때 모범이 되었다는 점, ▲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며, ▲ 기로신들의 친필 글씨와 더불어 그림이 높은 완성도와 화격을 갖추고 있어 현존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할 만한 예술성도 갖추었다. 아울러 계첩과 동시기에 만들어진 함 역시 당시 왕실공예품 제작 기술에 대해서도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므로 함께 국보로 함께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