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례용 가마 ‘울진 불영사 불연’ 보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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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례용 가마 ‘울진 불영사 불연’ 보물 된다
  • 정은진
  • 승인 2021.04.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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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목공예 불연 최초 국가지정문화재 인정 사례
울진 불영사 불연 (사진=문화재청)
울진 불영사 불연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울진 불영사 불연을 비롯해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송시열 초상’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울진 불영사 불연1670(현종 11) 화원으로 추정되는 광현, 성열, 덕진 등이 참여해 조성한 2기의 불교의례용 가마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약 20기의 조선 후기 불연(가마)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사례이다. 불교목공예의 일종인 불연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연은 불가의 불보살상, 사리, 경전, 불패(불보살의 호나 발원내용을 적은 나무패), 영가(불가에서 망자를 뜻하는 말) 예배의 대상을 가마에 싣고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모셔오는 시련의식에서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식법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불연은 모두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고, 그중에서도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극히 드물다. 반면 울진 불영사 불연2 모두 1670년이라는 분명한 제작시기와 승려 학종이 좋은 장인을 만나 불연을 제작하게 되는 동기와 배경, 제작에 동참한 시주자, 불연의 제작자로 추정되는 스님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균형미를 갖추었고 나무로 얽어 만든 둥근 궁륭형 지붕과 네 귀퉁이의 봉황조각, 난간의 용머리 장식, 가마의 몸체 전면에 표현된 연꽃, 국화, 화초 장식 등에서 보이는 조형미와 조각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특히, 불연의 몸체 주렴에 동경(청동거울)을 매단 최초의 사례로,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되는 동경이나 불화의 복장낭 앞에 매단 동경과 같이 어두움을 밝히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징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불연의 동경은 불교 의례 연구에 있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학술적 의의가 있다.

 

울진 불영사 불연은 조선 후기 불연 중 제작 당시의 온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제작배경을 상세히 담은 명문이 남아 있는 점, 공예기술 면에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됐다.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사진=문화재청)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사진=문화재청)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1656(효종 7) 만들어진 불상으로, 당시 제작된 나한상 중 수량과 규모면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이 일군의 불상은 제작에 있어 수조각승 무염의 통솔 아래 조각승들이 14명씩 분담해 제작했다. 참여 조각승들은 무염·승일파, 현진·청헌파, 수연파 등 역량이 뛰어났던 17세기 조각장들을 계승한 인물들이자 당시 불교계를 대표한 승려 벽암 각성(5751660)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그만큼 완주 송광전 나한전 불사의 중요성을 가늠케 한다.

 

완주 송광사 불상은 조각과 더불어 개금·개채 작업 등 조각승과 불화승간의 협업 체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영역이 다른 화원들이 어떻게 협업관계를 구축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유행한 목조와 소조, 채색 기법 등을 두루 활용하여 작가의 재치와 개성이 잘 드러나 있고 작품성도 뛰어나며, 나한상과 동자상을 일체형으로 제작한 창의성도 돋보인다.

 

따라서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송광사를 본산으로 활약했던 조각승들의 활동체계와 제작태도, 경향 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송시열 초상은 조선 중기 정치와 학문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성리학의 대가 송시열( 1607~1689)의 모습을 그린 18세기 초상화로, 제천 황강영당에 300년 넘게 봉안되어와 그동안의 내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2012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송시열 초상 (사진=문화재청)
송시열 초상 (사진=문화재청)

작품 상단에는 우암 송선생 칠십사세 초상(尤庵宋先生 七十四歲 眞)’이라는 화제가 적혀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송시열의 초상을 문인화가 김창업(金昌業)이 그렸음을 밝힌 김창협(金昌協)의 화상찬(畵像讚)이 적혀 있고 왼쪽에는 권상하(16411721)가 짓고 권상하의 제자 채지홍(16831741)이 필사한 화상찬이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168023세의 김창업이 74세의 송시열을 그린 초본(初本)을 참조해 후대에 그려진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송시열은 네모난 회색 사방건 귀퉁이가 네모난 직사각형 모자)쓰고 검은색으로 깃과 소맷부리의 가장자리를 두른 회색 심의(유학자가 평상시 입는 옷)를 입은 채 두 손을 맞잡아 소매 속에 넣은 반신상으로 묘사됐다. 특히, 주름이 깊게 파인 이마와 눈가, 희끗희끗한 콧수염과 턱수염 등이 인상적이며, 마치 정치와 학문에서 그의 굴곡진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희고 검은 긴 수염은 세밀하게 표현했지만 눈썹은 검고 짙게 그렸고, 황갈색으로 주름과 음영을 표현한 얼굴의 상세한 묘사와 달리 의복은 짙은 먹 선 위주로 굵고 략하게 묘사한 점 등 서로 대비되는 필선을 통해 송시열의 학자적 풍모와 기상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송시열의 초상화는 후대에도 추앙이 지속하면서 약 30점의 많은 작품이 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진재해(16911769) 등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우수한 사례에 속한다. 유려하면서도 단정한 필선, 정교한 채색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국보 송시열 초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견주어도 수준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작품이므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울진 불영사 불연 3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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