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육의전(六矣廛)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태바
조선시대 육의전(六矣廛)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관리자
  • 승인 2009.09.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시장 점포의 모습을 보여주는 「종로 시전행랑 유구」이전·복원하여 9월 15일 야외 전시장에 공개 한다.


종로 시전행랑 유구는 2004년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 일대 재개발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시대의 상가 점포인 시전행랑 유구로서 문화재청의 요청에 의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전·복원 사업을 추진하였다.


시전행랑이란 오늘날 시장의 상가 점포와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시전행랑은 1412년(태종 120부터 1414년까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 5가에 이르는 도로변 좌우에 2천여 칸이 넘게 조성되었고 국가에서 관리하였다. 종로 일대 시전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 특정 물품에 대한 전매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비단, 명주, 종이, 어물, 모시, 무명을 파는 점포가 번성하였는데 이를 육의전(六矣廛)이라고 한다.






▲ 시전행랑 건물 내부


이번 전시되는 시전행랑 건물 내부는 2칸 규모로 방(온돌)-마루/방(온돌)-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1426년(세종 8) 2월에 서울 도성 안에서 민가 2,400호와 시전행랑 160칸이 불에 타는 대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 유구 가운데 불에 탄 목재조각들은 그 당시 불에 탄 마루의 자재들로 추정된다. 관람객들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하여 투과율이 높은 강화유리를 설치함으로써 유구 위를 이동하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전행랑 유구는 가능한 약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이전·복원함으로써 외부환경의 영향을 가급적 받지 않도록 작업하였다. 온돌유구는 실측자료에 따라 위치를 잡고 설치한 후, 유실되어 없어진 부분은 황토 벽돌을 이용하여 주변 고래의 모양을 기초로 이전 당시 고래에서 수습한 기와편과 석재를 쌓아 복원하였고, 황토몰탈을 이용하여 증진 및 고정하였다. 복원 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발굴당시 수습된 흙을 이용하여 마감하였다. 탄화된 목재는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서서히 건조시킨 후 미생물 및 곰팡이 등의 번식 방지를 위하여 약품으로 강화처리하고 목재 밑면은 합성수지와 거즈로 덧대어 보강하였다. 석재유구는 실측도면에 맞게 제위치를 찾아 설치하였는데, 바닥면 높이를 맞추기 위해 박닥면에 마사토로 기초를 다진 후 황토 벽돌을 설치하여 전체적인 유구의 높이를 조절 하였다.



종로 시전행랑 유구는 당시의 시전행랑 구조나 대화재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데 큰 가치가 있으며, 온돌의 구조도 앞선 시기의 것과 후대의 것을 나란히 볼 수 있어 비교 가능하다. 또한 문헌자료에 보이는 종로 시전과 시전행랑에 대한 내용을 직접 확인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의 시전행랑 유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구성되어, 교육 및 다양한 문화체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