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匠人] 오색 흙과 장인의 정성이 만든 한 장의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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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匠人] 오색 흙과 장인의 정성이 만든 한 장의 기와
  • 관리자
  • 승인 2009.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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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예로부터 장흥은 인근 강진과 더불어 해토를 바닥 층으로 하는 농토가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출하되는 쌀은 미질이 좋았다. 이 해토의 바닥 층의 논에서는 맛 좋은 쌀말고도 전통 기와를 만드는 일종에 개흙이 생산된다. 숨 쉬는 기와, 수막새를 잇는 공법 상 5색의 다양한 색상을 연출하는 전통기와는 질 좋은 개흙이 우선이었다. 아직도 그런 해토 층의 개흙으로 기와를 굽는 제와장 한형준 옹은 82살의 나이에도 불을 때고, 일일이 손으로 기와 모양을 만드는 열정을 다하고 있다.






▲ 한형준 장인의 제와 작업장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제와 공장은 첫 눈에도 보기에 열악한 상태였다. 마당에는 마치 두엄처럼 높게 쌓은 듯한 인근 모량에서 채취한 개흙 더미가 쌓여 있고, 10여 평 남짓한 작업장은 간이 건축물과 같았다. 전수자의 말로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대한민국의 제와장이라고 써있는 명함을 내미는 선생님 흙 묻은 손에 내가 부끄러워진다. 무형문화재 전수관이다 이수관이다 하는 번쩍번쩍한 시설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전통기와의 대를 잇는 장소로서 한눈에봐도 불편한 환경이다.


기와를 만들기 위한 첫 작업은 물을 준 기와의 생질을 흙괭이로 촘촘히 쳐서 돌이나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발로 밟아 흙을 골고루 섞기를 세 번 반복해서 흙벼늘을 쌓는 일이다. 개흙 반죽을 짓이기고 깨는 구와질 작업은 젊은 사람이 하기에도 벅찬 작업이다. “기와 굽는 일은 손발 정성이야”라며 구와질 작업을 하는 한형준 옹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 한형준 선생



"열네 살 때 이모부한테 처음으로 기와 굽는 일을 배우게 되었지. 한 삼년을 꼬박 일했는데, 겨우 쌀 한 댓 박이 전부였어. 어쩌다 명절 때 빼고는 그마저도 없었지. 그래서 나주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모부가 불러도 안 갔어. 아버지도 가지 말라고 하고 말이야. 뼈도 안 여물었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해.”


선생은 줄줄 흐르는 땀을 씻어내면서 가래침을 ‘타악’하고 뱉고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며 말을 잇는다. “논바닥의 흙이라고 무시하지 말라고, 이 개흙에는 오색이 숨어 있지. 검은색, 노란색, 붉은 빛깔, 흰색, 사토를 기본으로 한다고.” 전통기와가 숨을 쉰다는 것은 바로 개흙의 사토(沙土) 때문이다.


구와질로 쌓아놓은 1m정도의 흙벼늘을 다시 ‘쩰줄’이라는 철사로 깎아내어 흙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쩰줄’은 무슨 훌륭한 도구가 아니라, 철사를 양손으로 잡고 흙을 잘라내는 작업인데, 이 작업을 통해 작은 돌멩이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쩰줄’로 1cm정도 얇게 흙을 잘라내고 다시 밟기를 세 번해야 비로소 기와를 만들 흙이 완성된다. 이렇듯 손과 발 그리고 땀으로 만들어낸 흙을 사용한 기와는 기계로 눌러만든 기와와는 다른 성질을 가진다. “전통기와는 숨을 쉰다”라는 표현은 장인의 손과 발로 만들어낸 기와의 흙에서 비롯된 것이다.






▲ 흙 준비 작업



“나는 아들을 못 낳았어. 딸만 여섯을 두었는데, 누구 하나 내 대를 잇겠다고 하는 자식이 있어야지. 여자애들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저 창대 군이 찾아와 제자가 되겠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젊은이야.” 선생님의 전통을 이어가는 전수조교 김창대 씨만 선생님 곁을 지킬 뿐, 고된 기와 만드는 일을 함께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전통 기와를 만드는 일은 여러 손이 필요하다며 전수자가 여럿이 지정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다음 작업은 담무락 작업이다. 담무락을 만들 자리에 먼저 기와의 크기로 머릿자에 철사를 끼워 놓는다. 그 위에 흙을 쌓는데, 흙 사이에 공간이 없도록 발로 밟아 평평하게 만든다. 쌓은 흙은 추로 수직을 맞추고, 긴 막대를 이용하여 머릿자의 철사를 끌어올려 직사각형의 담무락을 만든다. 기와 한 장의 두께로 조돌이라는 나무토막을 쌓아올리고, 나무토막을 빼내며 철사를 이용해 절단을 하면 한 장의 기와 판이 완성된다. 이렇듯 손으로 기와 한 장 한 장을 잘라내서 기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이다. 양쪽에서 틀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기와가 맞질 않는다고 한다.






▲담무락 작업


이렇게 만들어낸 기와 흙 판을 암키와와 수키와 와통을 사용하여 기와를 만든다. 나무로 된 와통에 먼저 천으로 된 통보를 덮고. 담무락으로 만들어진 기와 흙판을 붙인다. 이 때 수키와에는 흙 판 한 장, 암키와통에는 흙 판 두 장이 사용된다. 와통에 붙인 흙판에 흙물을 붓고 ‘나대’라는 기구를 사용하여 평평하게 기와의 모양을 잡는다. 모양이 잡힌 기와에 ‘바대’를 사용하여 무늬를 넣는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가운데 광목천을 빼내면 기와 모양이 완성된다.






▲ 기와 만드는 작업


모양을 잡은 기와는 마른 공기에 3, 4일 정도 반건조를 시킨 다음 건장치기 작업에 들어간다. 건장치기는 아래만 마른 기와의 윗면을 모양을 잡는 작업이다. 그리고 기와 안쪽에 낫금을 그어 두 장으로 떨어지기 편하게 한다. 암막새와 수막새 기와도 이때 만든다. 다음으로는 완전 건조를 위해 이 주일 정도 시간을 흘려보낸다.






▲ 건장치기, 막새 찍는 작업, 건조 작업


이렇게 성형된 기와를 가마에 적재하여 굽게 된다. 가마에 소성 과정은 말림불 넣기, 초불 넣기, 중불 넣기, 대불 넣기, 막음 불 순서로 이루어지며, 소성은 완성까지 3,4일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 동안 장인의 경험에 의한 불 넣기와 가마막음이 필요하다. 이렇듯 기와 한 장이 완성되기 위해 사람의 손이 많이 가니 기계로 찍어내는 기와와는 그 품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 가마에 적재하여 굽는 작업


"업자들이 타산에 안 맞으니까, 이것이 죽어버렸어...”라고 선생은 사라져가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경제의 논리에 뒤쳐진 전통기와는 명맥만 겨우 이어가고 있을 뿐 실제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통기와만이 가지는 색의 아름다움과 그 기능성은 기계로 만든 기와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전통은 경제의 논리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 장인의 땀으로 만들어진 한 장의 기와, 그 속에는 기계가 따라갈 수 없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기능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기와가 실제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기와의 전통은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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