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길량 장인
허길량 장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쭉 늘어서있는 33점의 비천상(飛天像) 시선을 잡아끈다. 비천상은 천의(天衣)를 나부끼며 천계와 하계를 오가는 선인의 모습을 묘사한 형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저마다 손에 음식이나 꽃, 차, 악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허길량 장인의 비천상(飛天像)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생동감이 넘치는 비천상을 보며 감탄하고 있자니, 허길량 장인이 비천상과의 남다른 인연을 털어놓는다. 허길량 장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을 순천 선암사에서 보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허길량 장인이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다. 배고팠던 시절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장 일터로 뛰어들어야만 했던 허 장인은 손재주를 살려 목공예 방면으로 유명했던 서수연 선생의 공방에 들어가게 된다.
열다섯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수년간 밤낮으로 목공예 기술을 익히던 그에게 어느 날 범종(梵鐘) 나무틀의 비천상을 조각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서수연 선생의 공방은 불교공예 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접해보는 분야였지만 밤새 자료를 찾고 공부해가며 비천상을 조각해냈다. 허 장인의 비천상 조각을 보고 깜짝 놀란 의뢰인은 어린 나이에 실력을 썩히는 것이 아깝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건네주었다고 한다. 바로 허길량 장인이 본격적으로 불교 미술에 대해 가르침을 받게 된 이인호 선생의 전화번호였다. 그렇게 허길량 장인과 불교미술의 인연이 닿았다.
▲ 허길량 장인의 작업실
이인호 선생의 밑에서 불상 조각의 기본이되는 불화초본을 이수한 허 장인은 1977년도에 천수천안 관음보살상으로 불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불상 조각 분야에서 솜씨를 인정받게 된다. 이후 1980년, 우리나라 최초의 단청장이었던 일섭 스님의 수제자인 우일 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불교 미술의 기법은 물론 인간성과 의식까지도 전수받음으로써 전통적인 불교미술의 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된다.
▲ 허길량 장인
허길량 장인이 비천상을 만나 전통 불교조각에 발을 들인지도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내년 봄 허길량 장인이 지난 3년 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33점의 비천상을 한국과 프랑스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부처님께 정성을 올리는 33점의 비천상 얼굴에는 하나같이 잔잔하고 편안한 미소가 새겨져 있다. 비천상을 조각한 장인의 마음도 이와같은 표정일 것이다. 부처님께 비천상을 올리는 정성으로 조각도를 잡는 허길량 장인의 모습이 그의 작품들 속에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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