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에 묻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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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 묻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다
  • 관리자
  • 승인 2009.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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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은 1988년도에 유적조사실로 처음 신설이 되었고, 2008년 8월에 고고연구실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국가적으로 큰 발굴들 황남대총, 천마총, 미륵사지 등 고고역사학의 한 획을 긋는 학술발굴들 위주로 사업을 진행해왔다. 1990년대 이후 각 지역별로 연구소가 생기면서 지방의 중요한 사업은 지방연구소가 수행하고 있으며, 고고연구실에서는 지방연구소 손이 밑치지 못하는 것들을 수행한다.

현재 풍남토성과 경북궁, 숭례문, 개성의 고려 궁성 등을 발굴 및 연구하고 있으며, 러시아,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등과 공동연구를 기획하여 우리 민족의 기원과 정체성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윤광진 실장을 만나 고고연구실의 연구활동과 실적에 대해 물어 보았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학연구실 윤광진 실장


Q : 고고연구실은 어떠한 일을 하는 곳인가요?


우리나라 고고학을 정부기관에서 하는 데는 양대 산맥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전시, 교육홍보를 하는 정적인 분위기의 박물관이 있다면, 동적인 분위기의 현장에서 일하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고고학발굴조사 현장의 그 중심에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이 있습니다.


Q : 다른 발굴조사 기관들과 국책기관으로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차이점은 학술조사하고 구제조사입니다. 국가가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학술조사를 해서 중요한 조사는 국가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폭증하는 대량의 발굴조사는 국가 대신에 발굴법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Q : 우리나라 발굴은 덮어놓고 나중에 발굴 하자 하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함축성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정부가 안하려고 한다고 볼 수 있지만 결코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어 자칫하면 부실발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유적이 나오면 보존하는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발굴을 해서 다 개발하려 하는데, 그렇게 개발 하면 안됩니다. 국가유적으로서 보존하고 후학들에게 연구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조사의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이 최소 3배~10배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우리는 발굴만 보고 안에서 하는 작업은 고려를 하지 않는데, 심도 깊게 봐야 합니다. 발굴이 우선은 아닙니다. 개발해서 부서질 수 있는 것들은 발굴을 해야 하지만, 숨을 가다듬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까지 발굴을 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Q : 고고연구실에서 주요하게 해왔던 사업들을 설명해 주세요?


고고연구실은 1988년에 신설이 되었습니다. 신설될 때에는 유적조사실로 시작되었고 2008년 8월에 고고연구실로 이름이 변경 되었습니다. 80년대까지는 국가적으로 큰 발굴들, 황남대총, 천마총, 미륵사지, 황룡사지, 안압지 등은 우리 실의 선배들이 발굴했고 그 이후로 지방연구소가 지역적으로 생기면서 지방연구소가 수행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Q : 발굴조사를 담당하시는 입장으로 개발과 보존의 적절한 선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해왔는데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국가적 차원으로 볼 때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학술적인 것, 사회적인 관습, 문화수준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가 깊은 민족이라면 그런 부분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문화재보호법은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반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악법이라 볼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문화재보호법이 없다면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문화재청과 산하 기관이 이런 것들을 행정적으로 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볼 때는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입장에서 같이 호흡을 하고 방법을 모색하지만, 경계면에 있을 때는 공직자로서 비전과 방향제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Q : 현재 고고학연구실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터는 무엇이 있나요?


지방연구소가 지방의 중요한 것들을 수행하고 있고 저희들은 전체를 보고 있습니다. 지방연구소가 손이 닫지 않는 곳을 저희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고 있는 서울의 경복궁은 1990년 '역사 바로 세우기' 할 때부터 착수하여 지금까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발굴조사를 근거로 하여 경복궁이 복원 되었습니다. 광화문도 그렇고 숭례문도 저희 조사가 내년 상반기까지 완료된 후 본격적으로 복원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한 풍납토성 발굴조사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Q : 숭례문 화재가 나고 복구 작업이 착수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을 텐데, 고고연구실에서는 숭례문 관련해서 어떤 조사를 했고 성과는 어떠한지?


실질적으로 외향적인 것은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하고 고고연구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 땅 속에 있는 층이을 가지고 합니다. 숭례문도 조선 초기 때 건립된 후 개보수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층이 발굴입니다. 층이 발굴했을 때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층이별로 나온 것을 가지고 초기, 중기, 마지막에 했던 것을 찾아내어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숭례문 발굴현장


Q : 우리나라 고고학의 기술적 수준은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나요?


절대치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동양권에서 보면 발굴기법에서는 우리나 일본은 거칠게 발굴하지 않고 꼼꼼하게 잘한다고 봅니다. 요즘에는 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Q : 앞으로 계획과 지원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저희들은 큰 차원으로 해외공동 발굴조사, 지표조사, 학술조사들이 고고연구실의 비전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지만 2007년부터 개성만월대 조사, 고려궁조사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못했지만 작년에도 시굴조사 발굴조사 했고 올해는 도록을 발간예정이고, 내년에 다시 재개되길 기대합니다. DMZ학술조사, 궁예도성 등 남북이 같이 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만월대, 고려궁조사는 우리 민족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하기 위해서라도 계속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 최근 우즈베키스탄과 공동연구를 협약한 카라테페 유적


고고학은 문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땅 속의 유물을 찾아내어 그 역사성을 규명하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다. 오랜 시간 퇴적된 땅 속에서 한민족의 근원을 찾는 일은 인내의 작업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묻혀진 역사를 밝혀내는 이들의 작업으로 우리의 역사는 과거에서 미래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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