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精髓)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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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精髓)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된다
  • 장해영
  • 승인 2022.10.3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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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선서문」등 고려․조선 전적, 근대문화재 6점은 보물 지정 예고
「봉화 청암정(奉化 靑巖亭)」등 3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청장 최응천)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精髓)라고 알려진 보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 「손소 적개공신교서」, 「이봉창 의사 선서문」등 고려․조선 시대 전적, 근대 등록문화재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또한 비지정문화재인 「봉화 청암정(奉化 靑巖亭), 「영주 부석사 안양루(榮州 浮石寺 安養樓),「영주 부석사 범종각(榮州 浮石寺 梵鐘閣)」등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익산 미륵사지 사리장엄구(청동합 6점) (사진=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사리장엄구(청동합 6점)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보물에서 국보로 지정 예고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益山 彌勒寺址 西塔 出土 舍利莊嚴具)(2018.6.27. 보물 지정)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心柱石, 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舍利孔, 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에서 나온 유물로서, 639(백제 무왕 40)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 사리봉영기(金製 舍利奉迎記)함께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및 금제 사리내호(金製 舍利內壺),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靑銅合) 6점을 포함해 총 9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리장엄구 중 금제사리봉영기는 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사리장엄구 중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기형(器形)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사리장엄구 중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하나에는달솔(達率) 목근(目近)’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달솔이라는 벼슬(2)을 한 목근이라는 인물이 시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되어 희귀성이 높다. 녹로(轆轤)로 성형한 동제 그릇으로서 그 일부는 우리나라 유기(鍮器) 제작 역사의 기원을 밝혀 줄 중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처럼 보물「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되어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된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와 백제 금속공예 기술의 역량을 응집해 탁월한 예술품으로 승화시켰으므로 한국공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유물로서 위상이 높다.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공예품의 대외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로서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므로 국보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

 

한편, 보물로 새롭게 지정 예고된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初雕本 瑜伽師地論 卷六十六)」과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大方廣佛華嚴經疏 卷八十八)는 모두 고려 11세기에서 12세기 동안 만들어진 불교경전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66」은 총 100권으로 구성된 유가사지론중 권66에 해당하는 고려 11세기에 간행된 자료로, 해당 권차는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유일본이다. 고려시대에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해 읽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釋讀口訣,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문장 사이에 단 구결)이 표시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 이 구결을 통해 고려시대 유식학(唯識學)에 대한 연구 수준을 엿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교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같이 보물로 새롭게 지정 예고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88」은 총 120권으로 이루어진 『대방광불화엄경소』의 권88에 해당하는 자료로, 1087(고려 선종 4) 우리나라에 목판이 전래되면서 국내에서 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1424(세종 6)에 일본이 여러 차례 대장경판을 요구할 때 다른 경판들과 함께 일본에 하사했으므로, 그 이후에 찍은 간행본은 국내에서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귀중본이다. 지정 예고 대상은 판본 및 인쇄상태로 보아 12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동일판본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권차이다. 또한 보존상태가 우수하고 조선중국일본 삼국의 불교교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종로도서관 소장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 2214책도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원나라 승려 염상(念常, 1282?)이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1334년까지 고승들의 전기(傳記)나 일화들을 시간 순으로 엮은 책인데, 1430(명 선덕 5) 다시 간행된 판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새긴 목판을 1472(성종 3)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1504)의 발원으로 찍은 것이다.

 

사시찬요(四時纂要)는 중국 당나라 말기인 996년에 한악(韓鄂)이 편찬한 농업 서적으로,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을 12달로 나누고 월별의 농법과 금기 사항, 가축 사육법 등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조선 초기 농정(農政)과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도입해 세종 때 농사직설(農事直設)이 편찬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농업경영에 참고한 대표적인 관련 서적으로 활용되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상은 조선 전기까지 사용한 고려 서적원(書籍院) 제작 활자를 바탕으로 조선 초에 사용한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 중자(中字)를 함께 사용하여 인쇄한 책이다. ‘사시찬요중 지금까지 한일 삼국에서 공개된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서지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술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간행 시기는 계미 중자의 사용례로 보아, 1403년부터 1420년 사이에 해당하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를 사용해 사시찬요를 인쇄하게 된 배경에는 단지 농업 활동의 증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극복이라는 의지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 책은 민생을 위한 농업의 증진, 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사실 뿐 아니라 간행 당시의 사회경제사의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손소 적개공신교서(孫昭 敵愾功臣敎書)(1972.12.29.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동마을에 대대로 거주해 온 경주손씨(慶州孫氏)의 후손 손소(孫昭, 1433~1484)가 하사받은 적개공신교서 1점이다. 적개공신은 1467(세조 13)에 세조가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신 45명에게 내린 교서로, 이 중 2등 공신 장말손(張末孫), 3등 공신 정종(鄭種)의 교서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해당 교서에는 수급자명, 공적내용, 특전과 포상, 등위별 공신명단 그리고 발급일자가 기록되었고 마지막 발급일자 위에 시명(施命)이라는 어보를 찍었다.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16세기 관련 의궤에 수록된 교서의 재질과 장황(粧䌙, 표구) 형식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개장(改粧, 새롭게 꾸밈)이나 후대의 보수 없이 550년 넘게 원래의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물이라고 하겠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李奉昌 義士 宣誓文)(2019.4.8. 국가등록문화재 등록)19311213일에 작성된 것으로, 이봉창 의사(1900~1932)가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한 국한문혼용 선서문이다. 이 선서문은 김구(金九)가 결성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제출된 것이다. 이 날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안중근 의사의 막내동생이자 한인애국단 임원이었던 안공근(安恭根)의 집에서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흑백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1931년 이봉창 의사가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선서한 당시 작성된 것으로, 이 의사의 의거 행적과 한인애국단의 활동, 항일투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역사적 산물이다. 이듬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단행한 윤봉길 의사가 작성한 선서문(1972.8.16. 보물 지정)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보물이 되는 봉화 청암정(경상북도 봉화군) 안동권씨 충재종택 경역 내에 위치한 정자로, 「청암정기(靑巖亭記)」등의 역사 문헌에 1526년 충재 권벌이 살림집의 서쪽에 세운 사실이 기록돼 있다.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자형 평면을 가진 정자 건축으로, 16세기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사례이다. 또한 자연 암반 위에 높은 기단을 쌓아 마루와 온돌을 구성하였으며, 영쌍창과 공포의 건축적 특징은 17세기 이전에 건축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경상북도 영주시)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문루이다. 국보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위치한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다포계 팔작지붕의 형식을 가진, 16세기 사찰 문루 건축의 대표적 사례이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원래 강운각(羌雲閣)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1555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1576년에 안양루를 그 자리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영주 부석사 범종각(경상북도 영주시)도 영주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종각으로, 정면 3, 측면 4칸 규모의 중층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의 형식을 가진 18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종각 건축이다. 청량산유록(淸涼山遊錄)」에 의하면 범종각 내부에 쇠종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19세기 이후 해당 범종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이 "국보로 지정 예고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이봉창 의사 선서문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또한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봉화 청암정」, 「영주 부석사 안양루」, 「영주 부석사 범종각」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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