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역사에서 현재로의 회귀
상태바
실상사, 역사에서 현재로의 회귀
  • 관리자
  • 승인 2009.1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기슭 평지에 천년고찰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는 828년(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에서 유학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洪陟)이 창건한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의 선종사찰이다. 구산선문은 귀족, 왕실과 결탁하여 타락한 교종불교에 반기를 들고 9세기에 접어들면서 신진 지식인들에 수용된 선종불교의 상징적인 사찰들이다. 기존의 교종불교가 사람의 운명이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적인 인식이었다면, 선종불교는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실상사는 창건 후 670여 년간 번창을 누려왔으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됐다가 3차례에 걸쳐 중수복원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실상사는 보물 37호 실상사 삼층석탑, 보물 35호 실상사 석등 등 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 실상사 전경


실상사는 2008년 ‘불사란 무엇인가’, ‘오늘날 불사는 종교의 정신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가’, ‘불사에서 담아야하는 21세기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에 대해 4차례의 세미나를 열었다. 그리고 불사의 기본지침이 필요하다는 결과에 따라 지난 10월 10일 ‘불사10조’를 선언하였다. 이에 대해 실상사 도법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먼저 실상사 세미나를 열게 된 배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불사에 대한 안목, 우리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실상사 관계된 사람들, 실상사 지역사회 주민들, 이 분야에 관계있는 타 종교계 인사들과 함께 “실상사 불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주제를 가지고 4차례 세미나를 했습니다.

92년에 이곳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실상사를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인가, 한국 불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또는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모색들을 해왔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실상사 불사를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스님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실상사 불사에 대한 구상과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실상사 스님, 전문가, 문화재청, 지역주민, 그리고 이 분야에 관심 있다면 누구라도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이를 종합해서 불사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도법스님


세미나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한 결과 지난 10월에 실상사에서 불사10조가 선언되었다. 이것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에 대해 물어보았다.

세미나 하는 과정 속에서 “실상사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 불사가 굉장히 크고 화려하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는가', '우리가 소홀히 한 것은 없었는가', 또 다른 하나는 시대정신을 반영해서 불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과연 시대정신을 반영하였는가', 이런 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다고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이 생각했고 결국 이런 것들을 실상사에서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내용으로 하나는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절은 불교인들의 것만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 국민과 대중들이 다 함께 해야 하는 그런 것이므로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보자는 것이 첫째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1200년이란 역사를 가진 사찰로서 실상사의 창건 정신, 정체성, 전통의 정신이 계승되어 질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21세기 현대사회로 사찰이 지어진 천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대정신이 불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실상사 불사를 하고 그런 것들을 잘 기록하고 정리해 내면 향후 우리가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니 그런 차원에서 실상사 선언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선언 내용은 실상사 불사10조로 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데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사 불사는 이런 사상과 정신, 그리고 이런 방향과 기조로 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어 도법스님은 세미나를 통해 앞으로 불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가 십 수 년 동안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천착해 왔던 것이 불교적인 대안과 사회적인 대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과거 출가자는 절에 살고 재가자는 마을에 살면서 하나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갔습니다. 초기 불교는 주로 출가자 중심이었지만 대승불교로 오면서 출가와 재가가 함께하는 불교활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을 사부대중공동체라고 하는데 이것을 회복해 내는 것이 한국불교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고 현대에 와서 불교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만들어 낸 문명의 원형입니다. 공동체 붕괴가 결국 사회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는데 한국 현대사회의 대안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했을 때 나는 공동체 마을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적 대안과 사회적 대안으로서 사부대중공동체 또는 지역마을공동체가 우리 시대에 붙잡고 가야할 중요한 화두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이 그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십 수 년 동안 그것을 천착해 와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오고 있었던 것을요. 결국 우리 절, 우리 마을이라는 개념으로 실상사 불사는 이루어져야 된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은 대안 운동으로서 마을공동체 운동을 해왔는데 이제는 실상사 불사로서 마을 문제를 다뤄야 하는 입장으로 정리가 된 겁니다. 난 이 부분이 가장 큰 성과라고 봅니다.

마을이 연못이라면 사찰은 연꽃입니다. 그런데 연꽃이 뿌리내리고 있는 마을이 무너지면 연꽃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농촌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종교계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사찰, 성당, 교회가 뿌리내렸던 연못들이 고갈되니까 그들도 함께 무너지는 겁니다. 불교가 스스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인가. 육체적으로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 사찰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건 아닙니다. 길 잃은 사람, 외로운 사람, 약한 사람, 슬픈 사람, 고단한 사람 이런 사람들을 품어 안기 위해서 사찰, 불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찰의 존재 의미가 이것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불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불사는 공간 불사와 사상불사 그리고 사회적인 불사, 이 세 가지가 갖춰져야 제대로 된 불사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상불사라는 측면에서 화엄학림을 통해 계속 그런 작업을 하고 있고 공간불사는 이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인 불사는 아까 얘기한 인드라망 혁명공동체 운동을 통해서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 (좌)실상사 삼층석탑(우)실상사 석등


도법 스님은 불사란 열려 있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언젠가부터 절은 일상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때문에 마을과 절이 운명공동체라는 도법스님의 말은 쉽게 이해하기엔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천년 고찰 실상사가 역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 공동체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너무나 기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