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스님의 청정도량 위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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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스님의 청정도량 위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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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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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추줄산 중턱에 비구니 사찰인 위봉사(威鳳寺)가 있다. 위봉사는 604년(백제 무왕5)에 서암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극락전중수기에 또 다른 창건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신라 말에 최용각이 전국 산천을 유람하다 봉산 산꼭대기에서 발견한 상서로운 빛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 세 마리 봉황이 날고 있어 그 곳에 절을 짓고 위봉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 위봉사


이 위봉사 주위를 위봉산성(威鳳山城)이 둘러싸고 있다. 위봉산성은 2006년 4월 6일에 사적 471호로 지정되었다. 1675년(조선 숙종1)에 축성하였고, 1808년(순종8) 관찰사 이상황이 중수하였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동학농민운동 때 전주부성(全州府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축성 당시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Km의 규모의 성곽으로 서·동·북 3개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안에는 4~5개의 우물과 9개의 못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일부 성벽과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 남아 있으며 서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는 붕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 북방수구처에는 예부터 절경으로 유명한 위봉폭포가 있다.





▲ 사적 제471호 위봉산성


이로 보아 17세기에는 위봉사가 성곽 수호의 임무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후기 불교를 이끌어온 나옹(懶翁) 스님이 1358년(고려 공민왕8)에 이곳에 머무르며 절을 크게 넓혀 지어 대찰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그 후 1466년(조선 세조12) 석잠대사가 수리하였다고 전해진다. 위봉사는 근세 초까지 이 지역을 대표하던 큰 사찰이었으나,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퇴락하였다. 이후 1988년에 주지 법중 스님의 원력(願力)으로 10여 년 간의 대대적인 정비를 거쳐 옛 대찰의 면모를 회복하였다. 오늘날에는 전북을 대표하는 비구니 선원으로서 50여 명의 비구니 스님이 수행하고 있다.

위봉사 대웅전인 보광명전(普光明殿)은 1977년 8월 22일 보물 제 608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조각솜씨나 목재를 다듬은 기법으로 보아 17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판은 1828년(조선 순조28)에 쓴 것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고, 안쪽 뒷벽에는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불화 여러 개가 그려져 있다. 또한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오색으로 갖은 무늬를 써서 그린 단청)이 있어 우수한 옛 채색기법을 볼 수 있다.





▲ 보물 제608호 위봉사보광명전


보광명전 오른쪽에 4칸의 관음전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2칸씩의 요사가 있는데,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전북 추줄산에 오르면, 유사시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축성한 위봉산성과 유서 깊은 비구니 사찰 위봉사를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선조들의 전통건축과 우수했던 채색기법을 감상하며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위봉폭포에서 절경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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