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사찰,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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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사찰, 송광사
  • 관리자
  • 승인 2010.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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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종남산 자락에 송광사라는 전통사찰이 있다. 전남 순천시에 있는 송광사와 이름만이 아니라 한자까지 松廣寺로 같아서 절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 더 살펴보게 하는 곳이다. 무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사찰이며, 가는 걸음걸음마다 문화재가 있어 선조들의 얼을 한껏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절 분위기가 아늑하고 봄에는 진입로부터 약 2km에 걸쳐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라 관광지로도 좋은 곳이다.





▲ 송광사 전경


송광사는 867년(통일신라 경문왕 7년) 도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당시에는 ‘백련사’라고 명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황폐해져서 결국 폐찰이 되었다가 1622년(광해군 14) 승려 응호·운쟁·덕림 등에 의해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1636년(인조 14)에 완공하였다는 기록이 전주부 송광사 개창지비(사적비)에 전하고 있다. 이때부터 이름이 송광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가람은 일주문·금강문·천왕문·종루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고, 종루 옆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을 지나면 나한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일자로 배치되어 있고, 그 공간배치가 자연스러워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


송광사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보물이 소조사천왕상(塑造四天王像)이다. 사천왕상이 가져야 할 분노와 용맹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으로, 1997년에 보물 1255호로 지정되었다. 오른손에 깃발을 들고, 왼손바닥에 금빛보탑을 얹고 있는 서방광목천왕의 머리끝 뒷면에는 1649년(인조 27)에 조성되었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이로보아 이 사천왕상은 제작연대가 확실하며, 병자호란 이후 국난 극복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사천왕상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1996년에 보물 1244호로 지정된 종루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유일한 열 십자형 2층 누각으로 가치가 높으며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의 지붕을 가지고 있다.





▲ 보물 1244호 종루


1996년 보물 1243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1636년에 벽암국사가 다시 짓고, 1857년(철종8)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안에는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하여 왼쪽에는 약사여래, 오른쪽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소조삼불좌상(塑造三佛坐像) 또한 복장유물과 함께 1997년에 보물 1274호로 지정되었다. 크기가 5m로 법당 안에 모신 좌불상으로는 무량사 소조아미타불상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크며, 조선 후기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장유물로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두 왕세자의 무사한 귀국을 비는 발원문이 나와 조성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국난극복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덧붙여 오른쪽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국가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리는 불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보물 1274호 소조삼불좌상


이 외에 전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일주문, 사적비, 동종, 나한전, 오백나한전 목조석가여래 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금강문, 벽암당부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전북 완주 종남산 아래 위치한 송광사는 조선시대의 선조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전통건축과 불교조각을 만나볼 수 있는 전통사찰이다. 비록 창건 당시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곳에 어린 숨결은 오롯이 남아 그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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