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安養市) 지명유래의 뿌리, 안양사(安養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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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安養市) 지명유래의 뿌리, 안양사(安養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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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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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의 ‘안양(安養)’은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청정한 극락정토로 괴로움 없이 즐거움과 자유로움만이 존재하는 이상의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그 뜻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안양시 지명의 유래는 불가(佛家)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신라 효공왕 4년(900년),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을 정벌하기위해 삼성산을 지날 때 일이다. 산꼭대기의 구름이 오색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살펴보다가 구름 밑에서 능정(能正)이라는 노승을 만나 사찰을 창건하게 되는데, 바로 그 사찰이 안양시 지명 유래의 근원지인 안양사(安養寺)다.








현재의 안양사는 작은 규모에 소박하고 고즈넉한 멋을 지니고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 때 최영 장군이 7층 전탑을 세우고 왕이 환관을 시켜 향을 보냈으며 승려 천명이 불사를 올렸다는 내용이 있어 당시 안양사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태종 11년에 왕이 충남 온양으로 온천욕을 하러 가던 길에 안양사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고 안양사와 관련한 여러 수의 시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좌)안양사 부도 / (우)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종무소와 명부전을 지나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심검당, 대웅전이 지형을 따라 계단식으로 배치되어있고 그 뒤로 미륵불이 우뚝 솟아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각원당의 부도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된 귀부가 있는데, 귀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글을 짓고 명필 이원부가 쓴 비문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귀부의 머리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문이 새겨져있고, 비좌의 각 면을 외겹 연꽃무늬로 장식했다. 크기는 높이 1m, 길이 3m, 너비 2.18에 달하며, 지대석과 귀부가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있다.



현재의 안양사는 유물들이 발견된 위치를 토대로 추정해 세운 것으로, 현존하는 건축물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그간 안양사의 정확한 위치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나, 작년 안양예술공원 입구에서 안양사터가 발견되어 잃어버린 사찰의 흔적을 되살리는 첫걸음을 뗀 상태다. 안양시 지명유래의 근간이 된 상징성과 의미가 큰 사찰인 만큼 지속적인 연구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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