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보광사, 우물의 기를 받다
상태바
괴산 보광사, 우물의 기를 받다
  • 관리자
  • 승인 2012.08.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도를 따라서 얼마나 올랐을까, 정상부근에서 두 갈래 길과 마주했다. 산로, 임도를 따라서 놓인 찻길, 높다랗게 치솟은 나무 길에서 잠시 산 아래를 굽어보았다. 중앙권력 강화를 꿈꾼 대원군에 의해 대찰이었던 절은 폐쇄되었고, 그 자리에 받침석도 없는 오층 석탑만이 그 시절의 아쉬움을 말하고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이 오층석탑은 1976년에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봉학사 탑이다. 고려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절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봉학사 탑 역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탑 속의 부장품 역시 일본으로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탑의 형태와 깨어진 광대의 크기로 보아 사찰은 제법 규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0년 전에는 이 절터에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가솔들과 규모가 있는 마을을 형성시키기도 했지만 이제는 탑만 외롭게 절터를 지키고 있다.




▲괴산 보광사

봉학사터 바로 밑에 천태종 소속 사찰인 보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벌써 25년째 보광사를 지키고 있는 운산스님은 평생 단 한 차례도 마르지 않던 보광사 우물, 즉 석관수가 큰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직전 말랐다면서, 당시를 회상한다. 더군다나 기이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전과 IMF 사태 직전에도 우물은 어김없이 말랐다고 한다. 보광사 물이 마르면, 나라의 변고가 생긴다며 고개를 내젓는 운산 스님은 25년 전 다 쓰러져가는 현재의 법당을 중건하고 요사 한 채를 더 짓고 보광산의 자애로운 바람처럼 산을 지키고 있다.




▲보광사 우물

절 입구의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 어린 시절 화전하는 아버지를 따라온 소년이 산에서 옮겨 심었다는데, 이제 그 세월이 50여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도 앳된 어린 소나무 같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는데, 저 소나무는 아직도 그 나이 그대로니.’



불현 듯 대웅전 내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이 떠오른다.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석조여래좌상은 여성적인 온후함이 돋보이고 얼굴이 커서 전체적으로 앞으로 약간 숙인 형태이다. 시기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적인 가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호사함과는 거리가 있는 소박함이 마치 어린 소년의 그 얼굴과 닮았으리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0호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

우물은 석관수라 그런지 물맛이 시원하고 단맛이 도는 듯했다. 스님이 우물의 머리를 씌워 가능한 마르지 않도록 조심한다는데, 저 아래 하늘을 이고 선 작은 사찰, 보광사에서 바라본 풍광은 온 더위를 날려버릴 것처럼 선함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