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장군이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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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장군이 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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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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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라이벌로 등장한 원균에 대한 재해석이 불거져 나오며 ‘이순신 폄하론’과 함께 ‘원균 명장론’이 대두되고 있다.

원균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사로써 왜적을 격퇴하는데 앞장서다 전장에서 순국한 위인이다. 하지만 원릉군 원균 장군에 대한 인식은 역적, 졸장, 이순신을 모함한 간신배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원균 장군에 대한 역사적 왜곡은 크게 4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첫 번째로 선조수정실록을 통해서이다. 당권 교체로 인해 다시 쓰인 선조수정실록에는 원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애국계몽운동과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영웅 세우기’의 일환으로 이순신이 거론되면서 영웅의 대응되는 인물로 원균이 악역을 맡게 되었다.

원균이 본격적으로 평가절하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의 일이다. 과거 명장의 업적을 빌려 군사 정권을 정당화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의 사업의 일환이었다.

1966년 현충사의 경계지역을 이전 1345평에서 10만여 평으로 확대하고 성역화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현충사의 들어가는 올해 예산은 28억 2000만 900여 만 원이다.

원균 장군의 묘소는 1980년 6월 도지정기념물 제 57호로 지정되었지만 8·90년대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국가차원의 관리와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근래 들어 문화재 전반에 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원씨 문중 소유인 원균 장군의 묘소와 사당은 문중의 일괄적인 관리하에 평택시의 협조를 얻어 관리가 되고 있다.

원균 장군 묘소에 들어가는 올해 예산안은 8000만원으로 예산안 내역은 묘역주변 조경과 배수로 정비공사이다.

원균 장군과 관련된 유일한 국가 보물인 선무공신1등교서(1113호)는 원씨 문중의 관리에 들어 현재 원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선무공신교서는 1604년 (선조37년)에 발급된 것으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이 끝난 후 나라에서 공이 있는 장수들에게 내리는 훈공을 장부에 기록하고 관직을 내린다는 교서였다. 이 교서는 국내에서 발견된 선무공신 교서 중 일등공신의 교서로는 유일한 것이며, 그 역사성과 희귀성을 인정받아 1992년 4월20일 보물 제1133호로 지정되었다.

또 임진왜란에서 왜적을 격퇴한 일등공신으로 이순신과 원균이 나란히 교서에 올라가 있어 이 두 인물의 관한 역사적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원씨 문중 후손 원제욱(67) 씨는 “다른 건 바라지 않으니 사람들이 원균 장군에 대한 올바른 인식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택 지역 향토사학자 김해규 씨는 “용장 원균과 지장 이순신의 신격화 작업에 따른 두 장군의 엇갈린 사후평가를 바로 잡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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