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단신 - ‘이선제 묘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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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단신 - ‘이선제 묘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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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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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8. 문화재청장 감사패 전달식 / 9.19. 기증식 -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분청사기 이선제 묘지粉靑沙器李先齊墓誌> 1점을 기증받았다.


이 묘지는 일본인 소장자 故 도도로키 다카시(等々力孝志, 1938-2016) 유족으로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이 우선 기증을 받아 2017년 8월 24일 국내에 들어왔으며, 최종적으로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선제 묘지 정면 및 측면>▲(사진-국립중앙박물관)

이 묘지는 조선 15세기 집현전 학사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 本官 光州)의 묘지로, 1998년 6월 국내 문화재밀매단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오랫동안 행방을 찾을 수 없었으나, 2014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노력으로 묘지의 소재를 알게 되었다.


불법 반출품임을 모르고 구입했던 일본인 소장자와 재단의 면담이 이어졌고, 2016년 11월 소장자가 사망한 후 유족 도도로키 구니에(等々力邦枝) 여사가 고인의 유지에 따라 기증이 이루어졌으며 이선제 후손인 광산이씨도문중(光山李氏都門中)도 기증에 동참하였다.


이 묘지에는 이선제(李先齊, 1390-1453)의 생몰년 및 행적, 가계 관련 내용을 담은 총 248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묘지의 앞면, 옆면, 뒷면 세 면에 글자를 음각으로 새기고 백상감토를 발라 긁어낸 후 마감하는 상감기법으로 표현했다.


이 묘지는 이선제의 생몰년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제작년도가 분명한 분청사기 기준작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의가 있다.


이선제는 본관은 광주(光州, 光山)이며,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부교리(集賢殿副校理), 강원도관찰사,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종2품) 등을 역임한 인물으로 사후 이조판서와 예문관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그러나 그의 5대손 이발(李潑,1544-1589)이 동인의 지도자로 서인의 지도자 정철(鄭澈, 1536-1593)과 대립하였는데,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그와 일가족은 죽음을 맞이했다.


이 때 이선제의 관직도 삭탈당하고 저술도 소실되어 그와 관련 기록을 주로 실록에서 찾을 수 있었으나, 이 묘지가 발견되어 이선제 생몰년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묘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 태토(胎土)와 유약의 색 또한 15세기 중반 제작 분청사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며, 제작연대가 분명하고 ‘위패(位牌)’ 형태라는 기형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이 분청사기 묘지의 가치가 높다.


또한 국내 소재 15세기 분청사기 묘지 4점이 보물(제577·1428·1459·1830호)로 지정되어 있어서 이선제 묘지의 희소성을 가늠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X-선 촬영으로 과학적 분석 과정을 통해 묘지는 여러 개의 태토 덩어리를 합쳐 두드려서 편편하게 만든 판으로 제작한 것이며, 묘지 태토의 조밀도와 공기층의 치밀도를 검토한 결과 조선시대 도자기의 일반적인 양상과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선제 묘지를 9월 19일 기증식에서 언론에 처음 공개하였으며, 이 행사에 일본 유족 도도로키 구니에(等々力邦枝) 여사도 참여하였다.


<감사패 수여식 현장>▲(사진-문화재청)

전날인 9월 18일 도도로키 구니에 여사는 삼청각에서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기증식 다음날인 9월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특별 전시를 진행한다.


이후 이선제 묘와 부조묘(不祧廟)가 있는 광주 지역의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선제 묘지를 이관하여 호남의 중요 인물 관련 문화재로 활용도를 높이고자 한다.


<감사패 수여식 현장>▲(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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