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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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십니까
  • 관리자
  • 승인 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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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청계천은 고단한 서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희망과 절망이 서린 삶의 터전으로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큰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옛 다리와 석축 등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청계천에서 어떻게 되살릴지에 대한 논의는 여기저기서 벌어졌지만 현재의 우리의 삶이 깃든 현대사 복원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못하였다. 이런 청계천의 현대사를 짚어볼 때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획은 바로 전태일의 죽음일 것이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한 켠에서 23살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법 보장하라”를 외치며 죽어갔다.




당시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열악한 조건에서 하루 16시간 이상 일해야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위해 바보회,
삼동회 등을 조직하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쓴 백건우씨는 "그는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여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달픔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할 정도였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나이에 여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숱한
밑바닥 경험 속에서도 평화시장의 다락방에서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는 어린 여공들을 바라보며 잘못된 사회현실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졌다.
그는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도달했고 온 몸으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전태일기념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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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받아 1984년 건립된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1996년도부터 청계천지역의 전태일기념사업을 추진해왔다.


전태일기념관추진위원회 측에서는 청계천이 복원이 되면 평화시장과 가장 가까운 다리를 ‘전태일 다리'로, 청계천 3가~8가를 '전태일 거리'로 명명하는 사업을 서울시와 협의중에 있다. 또한 전태일 생전에 주생활무대였던 평화시장과 그가 스스로를 불살랐던 장소와 연계된 곳을 선택하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30주기 추모식에는 전태일의 분신장소를 알리는 동판을 설치하였으나 현재는 복원공사로 임시철거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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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념관추진운동에 뜻을 모아 지난 4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전태일기념관 건립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태일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여야의원을 가릴 것 없이 “전태일은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는 물론 학생·노동운동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인간의 보편적 사랑을 실천한 전태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는 기념관 건립에 여야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현재 기념관건립추진위원으로 4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부지확보와 국비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다.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김동완 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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