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국모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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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국모 다시 살아나다
  • 관리자
  • 승인 200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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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국모의 아름다웠던 머리장식과 청자편 등 다양한 유물이 강화도에서 확인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지난 9월부터 발굴에 들어간 가릉과 곤릉에서 수많은 고려시대 유물이 출토 되었다.

가릉(嘉陵, 사적 제370호)은 고려 제24대 원종의 비인 순경태후의 능이고, 곤릉(坤陵, 사적 371호)은 제22대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의 능으로, 일제시대 이후 계속된 도굴과 무관심으로 폐허화되었던 것을 1974년 무너진 봉분과 주변 일대를 보수하여 사적으로 지정·보호하고 있었다.

지난 7월 24일 문화재방송국에서 방치된 가릉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이후 시민단체에서 고려왕릉에 대한 관리허술을 지적하였고, 찬란했던 고려시대를 재조명할 수 있는 발굴이 9월부터 시작되어 구체적 성과가 이번 발굴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발굴결과, 가릉은 다른 고려 왕릉들이 지하에 석실을 만든 지하식인데 반해 지상식으로 축조되어 있고, 봉토 내부에 방형으로 할석을 쌓아 봉분을 조성하였으며, 정다듬한 화강암을 사용하여 정교히 축조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석실 천장은 대형 덮개돌 3매를 동서방향으로 놓은 평천장이며, 이 덮개돌위에 8개의 장대석을 8각으로 돌려 호석으로 사용하였다. 석실 내 세 벽과 천장에는 회를 바른 후 벽화를 그렸으나 남아 있는 그림이 일부에 불과하여 전체적인 벽화내용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출토된 유물은 중국 송시대 주조된 원풍통보(元豊通寶)를 비롯하여 19종 77점의 동전과 옥장식품, 호박제 구슬 등으로 고려시대 유물 편년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곤릉(坤陵)은 고려 왕릉의 구조적인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장대석을 이용하여 경사진 부지를 3단으로 조성하고, 최상단에는 지하식 구조의 석실을 축조하였고, 중단에는 문인석을 비롯한 석물을 배치하였으며, 최하단에는 제례 공간인 정자각이 축조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석실 폐쇄석 앞에서 삼족향로와 간결한 당초문을 역상감한 병뚜껑, 그리고 화형접시 등의 고려시대 최상급의 청자가 다수 출토되었고, 정자각 주변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귀목문(귀신눈무늬) 암·수 막새를 비롯한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로써 강화도에 남아 있는 4기의 고려왕릉 중 이미 발굴된 석릉(碩陵)을 포함, 3기의 왕릉이 발굴됨으로써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개석상부 8각 장대석의 용도를 비롯한 고려왕릉의 구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출토된 청자를 비롯한 다수의 유물은 이 시기 문화상을 보다 상세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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