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人터뷰 1편 - 기순도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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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人터뷰 1편 - 기순도 명인
  • 황상윤
  • 승인 2018.04.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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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어 평창까지 홀린 전통 장(醬)의 명인 기순도.
360년 된 씨간장, 우리 장맛 알리기 위해 미 대통령 청와대 만찬에 선뜻 내줘

‘360년 된 간장’이 있다고?

지난해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가진 국빈만찬 이야기다. 당시 만찬의 화제는 단연 ‘독도새우’와 360년 된 씨간장으로 구운 ‘한우갈비’였다.
독도새우는 이름으로 인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주목을 받았다. 또 다른 관심은 한우갈비가 아닌 갈비에 소스로 쓰인 간장이었다. 360년이 된 씨간장.

▲기순도 명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

기순도 명인은 2008년 진장(5년이상 숙성시킨 간장)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선정됐다. 기순도 명인의 장맛의 비결과 전통 장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3월 3일 전라남도 담양군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을 찾았다.

“씨간장은 360년 동안 외부로 나간 적 거의 없어요. 청와대 만찬은 특별한 경우라 드렸어요”

씨간장을 청와대 만찬에 제공한 사람은 전남 담양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의 10대 종부인 기순도 명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이다. 씨간장은 장흥고씨 가문에서 360년째 종부에서 종부로 전해 내려오는 가문의 가보와도 같은 것이다. 외부로 나간 적이 거의 없는 씨간장을 전통의 맛을 알리기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청와대 만찬을 준비한 한윤주 콩두 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물과도 같은 씨간장을 선뜻 내주시는 것을 보며 위기에 빠진 한반도에서 이번 국빈 방문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씨간장은 청와대 만찬의 화룡점정이었다.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 전경.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 마당에는 1200여 개의 장독이 놓여있다.

“장독이 1200개 정도 돼요. 하나하나 놓다 보니 마당이 가득 찼어요”

간장하면 가장 흔한 요리재료인데 명인의 간장은 뭐가 다를까 궁금했다. 마침 3월 3일이 기순도 명인이 장 담그는 날이라는 말에 전남 고흥으로 달려갔다. 장을 만드는 순서는 동짓달(음력 11월)에 메주 끓이고 섣달(음력 12월)에 메주를 발효시켜 정월 (음력 1월)에 장을 담근다. 종가가 위치한 담양군 청평면 유천길에 들어서자 1200여 개의 장독대가 눈에 들어온다. 10대를 이어온 종가, 명인의 마당은 뭐가 달라도 다른 듯했다.

“장 담그기는 연습이 없어요. 그래서 좋은 콩, 좋은 물, 정성, 손맛 어느 하나 소홀하면 맛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기순도 명인은 아직도 전통방식대로 장을 담그고 있다. ‘장 담그기는 연습이 없다’는 기순도 명인. 45년 넘게 장 담그기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다며 좋은 콩, 좋은 물, 정성, 손맛 어느 하나 소홀하면 맛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기순도 명인올해 첫 장을 담그는 날. 장이 잘 되기를 바라며 물, 소금, 메주를 앞에 두고 제를 올리고 있다.

3월 3일은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한 날씨였다. 좋은 날을 골라 장을 담근다는 기순도 명인의 말처럼 장 담그기 좋은 날이었다. 씻어서 물기가 빠지고, 죽염을 풀어서 하룻밤 재우고. 다음날은 소금하고 메주하고 물하고 넣고 맛있어지라고 기도를 합니다. 장을 담그기 전 메주와 물, 소금을 놓고 올해도 장이 잘되기를 바라며 제를 올린다. 그리고 메주를 씻고, 죽염과 물을 섞은 다음 달걀로 염도를 맞춘다.

달걀이 반 정도 잠기면 적정 염도가 된다. 이렇게 만든 물을 항아리에 붙고 여기에 메주를 넣는다. 다음 고추, 숯, 대나무 등을 올리고 뚜껑을 닫고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장이 완성된다. 이런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비로소 명인의 장이 완성된다. 기순도 명인이 1년에 사용하는 콩이 2300 가마 정도 되니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짠맛만 있는 소금에 비해 간장은 짠맛 이외에도 감칠맛 등 발효식품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기순도 명인은 설명한다.

“트럼프 태어난 해 간장 없어 360년 된 씨간장 줬어요.”

트럼프 방한 청와대 만찬에 소개돼 화제가 된 360년 된 씨간장에 관해 물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미국보다 오래된 간장이 트럼프의 한국메뉴’에 나왔다며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트럼프의 나이와 같은 1946년에 담근 간장이 있는지 문의가 왔었다.

비슷한 시기의 간장은 있었지만 그해에 담은 장이 없어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비슷한 시기 간장을 1946년 간장이라고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 기회가 전통 간장을 알릴 기회가 될 거 같아 문중에서 10대째 내려오는 360년 된 씨간장을 전달하게 됐다.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의 씨간장트럼프 미 대통령의 청와대 만찬에 제공됐던 360년 된 씨간장.귀한 간장이라 문중에서도 제사나 큰 행사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씨간장은 1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집안에서 만든 간장 중 가장 좋은 진장을 조금씩 첨가해 떨어지지 않도록 보관한다. 그 양도 많지 않아 제사 등 집안의 중요한 날에만 쓰고 집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다.

“청와대 만찬과 평창올림픽에 소개되면서 외국인들도 우리 간장 맛을 보려고 많이 찾아와요”

기순도 명인의 장은 평창올림픽 식품 홍보관인 K-Food Plaza에도 소개되면서 외국 유명 요리사들이 간장 맛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그들은 이곳 간장 맛에 깊은 인상을 받고 간다고 했다.  간장 요리 중 하나만 소개하면 어떤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순도 명인은 ‘간장김치’를 소개하며 직접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간장김치’라고 해서 검거나 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일반김치와 같은 붉은 빛깔을 띠었고 아삭하고 담백한 맛이 났다. 대부분의 김치가 젓갈로 맛을 내는 반면 간장김치는 간장으로 맛을 내는 것이 차이라고 했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된 교육시설을 갖춰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간장은 어느 집에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전통을 지키는 곳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는 기순도 명인. 요즘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전통 장에 관심 있는 사람과 학생에게 장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한다. 기순도 명인은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교육시설을 갖춰 전통 장을 체계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 아래는 기순도 명인과의 일문일답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기순도 명인기순도 명인이 장 담근 항아리를 보고 있다.

45년을 장을 담갔지만, 아직도 자신 없다. 옛 방식대로 정성스럽게 할 뿐이다.

-간장과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우리 나이 때는 다 시집오면 했어요. 도시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다 했어요. 그렇게 시작했지요.

-장흥고씨 양진재 문중 간장만의 비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메주를 끓일 때도 좋은 날을 받아서 하고 궂은 날에는 못 오게 합니다. 그렇게 정결히 하고 정성을 다 들여서 하지요. 지금도 짚으로 꼭 매달고 옛날식 그대로 해요. 매단 것이 골고루 발효돼서 좋아요. 저희가 더 좋은 간장을 담그기 위해 죽염을 구워서 쓰거든요. 그게 다른 집과 (다른) 특징이라면 특징일 거예요.

▲메주 말리는 모습옛날 방식 그대로 메주를 말리고 있다. 메주에 사용하는 짚도 유기농으로 사용한다.

- 간장을 담글 때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간장이라는 게 연습이 없어요. 일 년에 한 번 담그면 그걸로 (계속) 먹어야 하거든요. 제가 한 지가 45년이 넘었잖아요. 지금도 자신 있는 건 아니에요. 정성과 모든 것을 규칙대로 하고 있죠.

동짓달 메주를 끓이고, 섣달 발효시켜 정월에 장 담가

- 장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인가요?
1년에 한 번 담그는 거예요. 동짓달에 메주 끓이는 달, 섣달은 메주 발효시키는 달, 일월(정월 )은 장 담그는 달. 이 과정이 열 가지 과정이라 하면 한 가지만 소홀해도 만들기가 힘들어요. 그 맛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하나하나 다 중요합니다. 콩도 중요하지요. 물도 중요하죠. 손맛도 중요하죠. 다 중요합니다.

▲메주를 씻는 모습장을 담그기 전 메주를 깨끗이 씻고 있다>

- 장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해주신다면?
동짓달에 메주를 끓여서 섣달에 발효를 시켜요. 정월달은 발효가 다 된 메주를 깨끗이 씻어서 물기가 빠지고, 죽염을 풀어서 하룻밤 재우고. 다음날은 소금하고 메주하고 물하고 넣고 맛있어지라고 기도를 합니다.

- 간장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똑같이 짜도 소금은 짠맛만 있잖아요. 간장은 감칠맛도 있고 여러 가지(맛이 있잖아요.) 발효식품이라. 그래서 더 좋죠.

씨간장은 맛이 다르다. 약이라고 하는 분도 있다.

- 트럼프 미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 명인의 씨간장으로 구운 한우갈비구이와 독도새우가 함께 화제가 됐습니다. 어떻게 만찬에 오르게 됐나요?
청와대에서 음식 하시는 분이 문의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가 이런 기회에 우리 간장을 알려서 세계화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수락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나이하고 똑같은 간장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나이와 똑같은 간장은 없었어요. 그래서 더 오래된 (간장을) 드렸죠.

- 씨간장은 다른 간장과 정말 다른가요?
저희가 360년 된 10대 종가잖아요. 맛이 아주 다르죠. 옛날 간장을 아시는 분들은 (씨간장을) 약이라고도 평가하십니다. 아주 진하고 맛있습니다.

▲장흥고씨 양진재 종가 전경 하늘에서 본 모습

- 평창올림픽에도 소개됐다고 하던데?
네. (올림픽 기간에) 외국인들에게 홍보해야겠다고 (간장을) 달라고 연락이 와서 (드렸어요) 그래서 전시가 되었고 외국인들 유명한 분들도 많이 왔어요. 간장 맛을 보기 위해서.

- 해외 유명 셰프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한식에 관심이 있고 모든 음식은 간이 되어야 하거든요. 우리나라같이 좋은 간장을 안 쓰고 소금을 쓰고 왜간장 쓰고 하잖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기본인 간장을 쓰거든요. 몇백 년 내려온 (씨간장이) 신기한가 봐요. 맛을 보고 놀라시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전통 장 알려 줄 때 가장 보람있어, 교육시설 갖춰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어

▲간장김치간장김치가 다른 김치와 차이점은 젓갈을 쓰지 않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담백하고 아삭한 맛이 난다.

- 간장요리 중 한 가지 소개해준다면?
저희는 평생 간장으로 김치를 담가왔거든요. 간장 김치하면 사람들이 짜서 어떻게 먹느냐, 색이 까맣다. 그러는데 전혀 아닙니다. 다들 신기해하고 좋아하세요.

-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제일 보람되게 느꼈던 것은 대학교에 가서 식품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메주와 간장을 만드는 것을) 전혀 모르더라고요. 이화여대, 상명대 등 5개 대학을 가서 (강의를) 했어요. 강의라고 할 것도 없고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더니 학생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저희 간장 김치도 가져가서 맛보게 하고, 한식에서 간장이 이런 역할을 한다는 것도 말해주고…. (학생들이) 무척 좋아했어요. 많이 알려야겠더라고요. 요즘에는 외국인도 관심 있어요. 더군다나 한국에서 식품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알아야 하잖아요. 많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대학교에 갔을 때도 와서 자고 직접 배울 수 있느냐고 물어봤었는데 저희가 아직 그런 시설을 못 갖추었거든요. 제가 여유가 있다면 그런 (교육)시설을 갖춰서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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