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 영동 반야사, 천안 광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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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 - 영동 반야사, 천안 광덕사
  • 관리자
  • 승인 2018.10.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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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면서 행복한 사람들이다.

10월 6일 태풍 콩레이가 몰려와 전국을 물폭탄으로, 곁살이로 강한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도 진행된 답사, 예정된 우리의 행복 여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1박 2일 충북 영동의 반야사와 다음날 10월 7일 천안 광덕사로 떠나는 문화유산 답사, 4분기 깨비나라의 정기답사였다.

고양시 원당에서 시작된 순례(?) 길은, 삼십여 명을 싣고 안양과 죽전을 경유해서 반야사로 향하는 그 장도를 시작했다. 운전하시는 분은 여자분, 내가 느끼기에 다소 짜증(?)스러운 분이었다. 비는 오고, 운전하는 분은 마음에 안 들고, 이래저래 잡치는 기분, 어쨌든 나의 구라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되어야 했다.

우선 가벼운 소재로 다른 날보다 다소 억세게(약간의 음담패설과 욕설을 섞어서) 구라를 풀기 시작했다. 일단 잠을 재워야 했다. 구라만 시작되면 곧바로 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염병할 그날따라 회원들이 잠을 안잔다. 태풍 소식에 눈만 말똥말똥, 아니면 내 강의가 지나치게 재미있었는지, 더군다나 역사 독서 왕을 자처하는 박수복 선생이 참여를 했다. 무언가 꼬투리를 잡히지 말아야 했다. 자라, 좀 잠 좀 자라. 주문을 외면서 핏대를 올려 구라를 풀었다.

이 인간들을 모조리 수면제를 먹여볼까 이런 생각을 했지만 잠은 안잔다. 고타마 싯탈타가 어쩌고저쩌고, 그가 사문유관을 통해 어쩌고저쩌고, 부탁이다. 잠 좀 자라, 이놈의 회원들아! 그런데 아조 좋은 조짐이 보였다. 이귀녀 씨가 어쩌고저쩌고 할 때 저쩌고 중간쯤 골아떨어진다. 아,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나 둘 눈이 게슴츠레, 그런데 이놈의 운전기사 양반 갑자기 휴게소 간단다. 모두들 눈이 동그래져 우르르 오줌 싸러 고고, 나는 내친김에 성질나서 똥도 쌌다.

어쨌든 우리는 빗속을 뚫고 반야사 진입로 부근 주차장에 도착했다. 스님은 차가 못 올라오니, 거기서 식사를 해결하란다. 비는 옆 동네 이쪽 동네 저쪽 동네 모든 동네 똘만이들을 데리고 왔는지, 거듭 세차게 퍼붓는다. 밥맛 더럽게 없는 식당에 도착해서 밥맛 떨어지는 점심 식사를 했다. 회원들은 오는 비를 보면서 다소 심드렁해졌다.

어쩌랴, 그래도 먹어야지. 그렇게 말렸건만 술이 시작된다. 그래라, 비도 오는데, 여기서 잠깐 퀴즈. 비는 과연 몇 도인일까요? 퀴즈입니다. 아는 분들은 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십시오. 어마무시한 상품이 없습니다. 염병, 땜병 가다마이 속병,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더냐! 바로 도깨비들 아닌가. 하늘을 모조리 찢어진 눈으로 쳐다보니, 바로 하느님이 꼬리를 내린다. 비가 슬금슬금 소강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하더니 계곡 물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주원 부회장이 계곡물을 헤치며 먼저 반야사로 올라갔고, 나는 겁보라서 잠시 더 기다리기로 했다.

모세의 기적인가? 아니면 부처님의 기적인가. 아니면 우리 도깨비 회원들의 무서운 눈깔 때문인지, 어쨌든 드디어 길이 뚫렸다. 무사히 반야사에 안착, 성제스님은 가장 좋은 방을 내주었다. 완전 독채 우리들만의 공간이 생겼다. 짐을 풀고 비가 멈춘 반야사의 전경을 쳐다보면서 회원들은 탄성을 질렀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특히 멀리 시애틀에서 날아온 김미선 씨는 좋아서 팔딱팔딱 뛴다.

미국 가서 추억할 게 많이 생긴 것 같다면서 나에게 절대 뽀뽀하지 않았다. 나는 다소 안심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휴우, 하는 숨을 내쉬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회원들은 사찰을 더군다나, 전망대를 향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하나 같이 비경이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채로운 프로그램, 성제스님과 한바탕 여울 마당, 그리고 문 고문님과 배우는 민요 한마당이 이어진다. 참고로 문 고문님은 무형문화재 전수 조교다. 낭랑한 목소리로 산사를 떠들썩하게 하자는 우리들의 음모는 적중했다. 모두들 즐거워 생난리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원운미 씨의 적나라한 음치의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을 여러 회원들에게 알립니다.

드디어 희대의 도박판이 벌어진다. 선수입장 곽진수 회장, 박영서 감사, 나, 김재호 부회장, 으 역시나 뻥카는 안 통했다. 나는 거듭 연전연패를 했다. 그래도 즐거운 도박판이었다. 사찰에서 이런 도박판을 벌일 거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나. 막 열두시가 넘었을 때 뒷마루에서 담소를 즐기던 여성 회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야, 별이다. 어마어마한 별이 떴어요!

도박판 일시에 뒤집어진다. 회원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나 뒷마루에 앉아서 별을 본다. 장관이었다. 하늘에는 정말 틈 없이 빼곡한 별이 떠다닌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별에 모두들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하루가 진다. 우리의 행복도 기분 좋은 잠에 빠져든다. 첫날은 이토록 우리를 우리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우리들의 행복한 여행은 아름다움이다.

드디어 눈을 떴다. 그런데 웬일? 내가 여자들 방에서 잠을 잤다는 것 아닌가. 회장님이 하도 코를 골아 피해 들어온 방이 여자 6명이 자는 방이었다. 꽃밭에서 하룻밤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너무 추웠다. 그리고 정작 나도 심하게 코를 고느라 옆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단다. 거기다 잠꼬대까지, 옛날 어머니가 너는 거짓말 못하겠다. 낮에 있었던 일을 모조리 잠꼬대로 해대니, 우라질, 큰일 났다. 내가 잠꼬대하면서 회장님은 너무 사람이 좋다는 등, 김재호 부회장은 정말 잘생겼다는 등, 박영서 감사님은 젠틀맨이라는 등, 그런 말을 늘어놓았으면 어쩌지…….

다음 날 아침 비는 어느 틈에 몰려가고 백화산 자락을 통해 드러난 산세 비경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성 회원들의 멈추지 못하는 분단장 세례가 시작되고, 일부는 진작 기상하여 사찰의 비경에 빠져들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참고로 밴드에 올라온 사진이 도합 천장을 넘었으니, 이 또한 기록이다. 그런데 아직도 올리지 못한 사진이 몇 천 장은 된다나, 뭐라나.

아침은 사찰의 특별 배려로 죽이다. 회원들은 한마디로 죽이는 ‘죽’이라고 음식에 대한 평가를 갈음했다. 저녁 무렵 술에 피곤에 전 회원들을 특별하게 챙기라는 성제스님의 전언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비가 벗어진 하늘과 그 감탄할 그 무엇도 앞선 걸음을 못하게 만드는 풍경,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살면서 탓하지 않고, 양보하고, 비열하지 않게 사는 법을 배웠으면 싶다. 좋은 경치는 인격과 다름없다. 좋은 경치는 사람의 좋은 모습과 다르지 않다. 뭇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런 좋은 경치에 선인이 따로 없다지 않는가. 온순해진 경관에 온순해진 하늘과 온순해진 회원들의 모습에서 무한한 행복이 솟아난다.

이 자리를 빌어서 성제스님 감사합니다. 하고 깊은 성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반야사는 우리에게 방종하지 않는 지혜를, 겸손함의 풍경을 용서와 참회의 정갈함을 맛보게 하는 성지였다. 회원들은 하나 같이 낮아지고, 또 겸손해서 종교를 초월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깊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스님을 모시고 기념 촬영을 하고, 이때도 경치에 취해 참여하지 못한 회원들은 반성하시오. 또 다시 이동, 광덕사를 향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하늘은 맑았고, 도로에는 차가 몇 대 없었다. 영락없이 사작 되는 나의 구라, 사마천의 사기와 똥구멍에 얽힌 회양의 복수혈전, 회원들은 모두 빠져든다. 나의 구라에, 아니다 깊은 잠으로……. 다행이다 오늘은 일찍 보냈구나. 나도 눈을 붙인다.

광덕사는 호두나무 첫 시원지이다. 회원들은 입이 딱 벌어진다. 사찰의 비경도 비경이지만 광덕사 스님이 내준 점심 공양 때문이다. 어느 최고의 음식점보다 잘 차려진 점심상을 받고 회원들은 황송함에 어쩔 줄 모른다. 어느 멋진 식사보다도 최고의 식단이 차려졌다.

“이국장이 온다고 특별하게 신경을 쓰긴 했는데……,”

나의 어깨가 한번 으쓱 올라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뿐이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말았다. 음식이 너무 화려하고 맛있는 바람에, 나 같은 놈은 안중에도 없었다. 눈물이 비 오듯 전혀 쏟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각에서 이어지는 문 선생의 장고와 낭랑한 노랫가락 절간이 떠들썩해진다. 관광 온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우리 일행에게 눈길을 주고, 사찰의 음식공덕에 대신하는 우리들의 합창은 떼창이 되어 날아다닌다. 광덕사는 효령대군이 머물면서 부모은증경을 필사한 곳이다. 철옹스님이 오랜 동안 광덕사에 주석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는 과정을 회원들에게 설명하자 분위기가 숙여해 진다.

인간은 깊은 좌절을 통해 거듭난다. 사마천은 궁형(거세형)을 받고 사기를 썼고, 한비자는 태산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일뿐이라고, 그 좌절에 경각심을 주었으며, 여불위는 촉으로 유배를 가서 그 유명한 춘추를 썼고, 손자는 두 다리가 잘리고 난 후에 손자병법을 썼다. 우리는 좌절을 통해 한 걸음 나가는 법을 베운다 하는 교훈을 얻었다.

회원들은 하나 같이 진정한 답사였다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모습이었다. 비록 태풍이 몰려왔지만 정말 잘 참석한 답사였다고, 다음 번 답사에도 모두 참석하자는 말로 버스에서 깊은 여독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끝으로 모든 일정과 프로그램에 참석해진 회원들과 임원진, 특히 곽진수 회장님과 이택하 운영위원장님, 박영서 감사님, 오주원, 김재호 두 부회장님, 이용우 김정 두 총무님 무엇보다도 반야사 주지스님 성제스님과 광덕사 주지스님 철옹스님께 저의 인생 아름다운 도전에 동참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11월 중에 있을 망년회에도 깊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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