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에 몸살 앓는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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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에 몸살 앓는 경주 남산
  • 관리자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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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유적지 중 남산은 산 전체가 사찰과 불탑, 민간 신앙 바위 등으로 이뤄진 신라인의 불국토 의지를 보여주는 ‘불(佛)산’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신라 귀족의 문화라면 남산은 신라 시대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는 곳이다.


한 마리의 거북이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라는 남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유적답사가 해마다 늘고 있는 요즘이지만 불상이나 탑 앞마다 불공을 드리기 위한 복전함과 초가 켜져
있어 남산의 기본적인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라의 혼 가득한 ‘삼릉골’에 올랐더니…



경주 남산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세계문화유산이며 국립공원이다. 남산에는 현재 147개소의 절터와 118구의 불상, 96기의 탑,
13기의 왕릉이 확인됐고 문화유산은 672점을 헤아리고 있다.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남산 삼릉골 정상

골은 깊고 능선이 변화무쌍해 작으면서도 큰 산이며 전체가
불교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문화유적 답사의 ‘1번지’로 꼽히기도 한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 소장은 “20여년 동안 남산을 답사했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을 정도로 방대한 유적이
널려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유물이 산재해 있지만 남산의 40여 개 골짜기 중 불상 유적이 가장 많다는 일명 '냉골'인 삼릉 계곡만을
따라 올라갔다.



곳곳의 자연스런 불상 조각에서 신라인들이 돌을 떡 다루듯 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한다.


삼릉골 초입에 들어서면 기다리고 있는 ‘배리 삼존불입상’(보물 제63호)은 해의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미소를 보여주는
7세기 신라불상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미소라 할 만큼 넉넉한 웃음과 정감을 보여준다.


삼릉골에서 처음 만나는 불상은 목과 손이 잘려나가 섬뜩한 느낌을 주지만 부처의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은 ‘삼릉골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계곡에 묻혀 있던 것을 경주 동국대 대학생들이 발굴해 옮겨놨다고 한다.


남산의 불상들에서는 이같이 목이 잘려나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 데 대부분 억불정책을 펴던 조선시대 유림들이 계곡으로 밀어
떨어뜨리면서 훼손됐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훼손시켰다는 소문도 있으나 일본 학자들은 남산 유적발굴과 연구에서 초석을 다졌으며 아직까지 이들의 연구가 ‘바이블’이
될 정도로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 아래 학술적인 성과를 이뤘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일본 학자들의 남산 연구가
토대가 된다는 것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삼릉골 소나무 숲을 지나 왼쪽 경사면에 암석들이 모여 있는 곳에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이 있다.
이 보살상에서도 자애로운 미소를 보여주며 자연과 호흡하려 했던 신라인들의 혼을 느끼게 한다.


미애관음보살을 지나 200m 오르면 널찍한 터에 있는 암벽에 ‘삼릉골 선각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이 바위에 수채화를
그린 듯 조각됐다.


조금 더 오르면 상당히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삼릉골 석불좌상’(보물 666호)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원의 말을 빌리면 “석굴암 석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유물인 데 조선시대 유림들에 의해 코 밑에서 턱까지 완전히 파손됐고
뒤를 받치던 광배도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 의해 떨어져나가 볼 품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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