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N 뉴스 - [시사취재] 조선시대 왕실 관련 유물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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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N 뉴스 - [시사취재] 조선시대 왕실 관련 유물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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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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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선옹주의 궁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사진=문화재청)


조선시대 숙선옹주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왕실유물 인장 ‘중화궁인’
민관협력으로 돌아온 문화재이기에 더 뜻 깊은 귀환


조선시대 왕실 관련 유물 2점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3월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조선시대 숙선옹주가 살던 궁에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이동궁명사각호(白磁履洞宮銘四角壺)’와 조선시대 왕실 관련 인장인 ‘중화궁인(重華宮印)’을 라이엇 게임즈 후원으로 미국 뉴욕의 경매에서 매입하여 국내로 들여왔다.

이 두 유물이 국내로 무사히 환수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재청 산하 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과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 한국대표 박준규)의 활약이 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외 경매현황을 점검하던 중 두 유물을 발견하였으며, 전문가들의 가치평가와 문화재청과의 구매 타당성의 과정을 엄밀하게 거쳐 경매로 구매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문화재청과 문화재지킴이협약을 맺고 한국 문화유산 보호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이 환수에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들어온 ‘백자이동궁명사각호’는 조선 19세기 분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단아한 형태의 사각호로, 바닥면에 청화(靑華)로 쓴 ‘履洞宮(이동궁)’이라는 명문이 있다. 궁(宮)은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장소에 붙이던 명칭으로 왕자와 공주, 옹주가 혼인 후 거처하던 집도 궁(宮)으로 불렀다.

왕실 가족의 궐 밖 궁가는 사동궁(寺洞宮)과 계동궁(桂洞宮) 등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백자호에 쓰여 있는 ‘이동궁’의 이동(履洞) 역시 서울의 한 지명(현재 서울시 중구 초동 일대)으로, 이 백자호는 혼인 후 이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 숙선옹주(淑善翁主)의 궁가에서 사용된 기물로 추정된다.

이 유물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왕족 숙선옹주는(淑善翁主 1793~1836)는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서차녀, 후궁 수빈 박씨 소생이다. 제23대 왕 순조(純祖, 1790~1834)의 동복여동생이기도 하다.

숙선옹주는 1804년(순조 4년) 5월 27일 12세의 나이에 홍현주에게 하가하였다. 옹주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유일한 동복누이로 사이가 매우 좋았으며, 순조는 누이 옹주의 혼인에 기해 내수사에 명해 쌀 1백 석, 무명 10동(同), 포(布) 5동, 돈 3천 냥을 내리게 하고 전례로는 삼지 말라고 하교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왕실 인장 '중화궁인'>▲(사진=문화재청)

‘중화궁인’의 인뉴(印鈕, 도장 손잡이)는 서수(瑞獸) 모양이고, 인면(印面, 도장에 글자를 새긴 면)은 ‘重華宮印(중화궁인)’을 전서와 해서가 혼용된 독특한 서체로 조각되어 있다. ‘중화궁’은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에 언급되어 있으며, 앞으로 면밀한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번에 환수되어 돌아온 조선왕실 유물은 어떠한 경로로 해외로 반출이 되었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해외 반출되었던 조선시대 왕실관련 유물의 환수가 민관협력으로 이루어진 문화재 환수이기에 그 의미가 깊다.

이번 환수에 기여한 라이엇 게임즈는 국외소재문화재가 유통 시장에 등장하는 시점이나 매입 성공 여부를 예측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2012년부터 문화재 환수·활용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을 해왔다. 그동안 조선 시대 불화 ‘석가삼존도’와 ‘효명세자빈 죽책’, 항일의병장 척암 김도화의 ‘척암선생문집책판’ 환수에 도움을 줬으며, 이번 2점의 문화재 환수로 또다시 의미 있는 환수 사례를 남겼다.

국내로 돌아온 조선 시대 왕실 관련 문화재 2점은, 지난 2017년 환수된 ‘효명세자빈 죽책’, ‘덕온공주 동제인장’과 ‘덕온공주 집안 한글자료’(2018년 환수)에 이어 조선 시대 왕실 관련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외 반출되었던 조선시대 왕실관련 유물의 환수는, 국가의 상징성이 담긴 유물의 환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아울러, 과거 불행한 역사의 청산이라는 관점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조선왕실 유물의 환수는 국가의 상징성을 되찾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가가 가장 먼저 앞장서서 진행해야 할 사업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왕실유물의 지속적인 전수조사도 필요하며 문화재 환수를 위한 민관협력도 지속·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문화재 환수를 위한 민관협력을 지속 강화하여 해외로 반출된 우리문화재 환수와 지킴에 앞장서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국외소재문화재 환수·활용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되찾은 조선왕조의 유물인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은 앞으로 조선왕실유물 전문기관인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에서 관리될 예정이며, 유물에 대한 전문전인 보존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국민들에게도 유물을 전시할 계획이다.

취재팀 박혜린 기자
hellolin23@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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