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취재] 문화재 등록된 '이자해자전 초고본'을 쓴 이자해 선생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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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취재] 문화재 등록된 '이자해자전 초고본'을 쓴 이자해 선생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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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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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해 선생의 가족사진(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자해 선생)>▲(사진=독립기념관 고다현 과장 제공)


광복군 의사로 활약하며 수많은 독립군의 목숨을 구해, 200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이자해자전 초고본' 3.1운동부터 1960년대까지 기록되어 있어,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


독립운동가 이자해는 1894년 10월 22일에 평안북도 중강군 장사면에서 태어났다. 중강진공립병원 의사로 재직하면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 그 후, 청년 37명과 중국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해 조맹선(趙孟善, ?∼1922)이 이끌고 있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참여했다.

대한독립단이 ‘대한독립단총단’으로 바뀌어 불렸을 때 의무부장을 맡아 장백현 지단의 정황을 파악하고, 신입 청년의 신체검사와 치료를 담당하면서, 서간도 일대에 유명한 의사로 알려졌다.

그 뒤 팔도강 특파대를 조직하여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1923년 경에는 북경으로 이주하여 아신의원(亞新醫院)을 열고 진료했다. 1926년 경에는 남경 국민정부의 북벌군 풍옥상(馮玉祥) 부대에 참여하여 산서성 대동(大同)・태원(太原) 등지에 병원을 설립했다.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내몽골로 이동하여 하투(河套)·영하(寧夏) 일대에서 국민당군 군의관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군과 친일 몽골군과의 전투에 나섰다.

1944년 8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인 김구(金九)의 공작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주수원성초모처를 조직하여 광복군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 의사로 지내다 65세에 병원에서 퇴직한 뒤, 북경으로 이주하여 딸과 함께 지내다가 1967년 74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200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이자해자전 초고본 표제면>▲(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8일,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이자해의 자서전인 「이자해자전 초고본」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등록문화재 제756호 「이자해자전 초고본」은 1919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활동했던 내용을 기록했다.

중국 서간도 지역의 대한독립단의 조직과 변화, 내몽고 지역에 한인들의 거주 사실과 이들이 일제 패망 후 한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사실, 한국광복군과 연계하여 병력을 모집하는 초모(招募) 활동을 전개한 사실 등 중국 베이징 이북에서 내몽고 바오터우(包頭)에 이르는 지역의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수록하고 있어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이자해 선생님은 의사로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셨고, 독립운동가로서 나라를 살리신 분이시다”라며, “그 분의 일대가 담긴 자서전이 문화재로 등록되는 일은 매우 뜻 깊은 일이고, 앞으로도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기록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재팀 임영은 기자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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