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이지당’ 현판, 북벌론 주장한 송시열 선생 친필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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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이지당’ 현판, 북벌론 주장한 송시열 선생 친필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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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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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덕씨가 모각한 '옥천 이지당' 현판>▲(사진=옥천군청)


향토전시관에 보관 중이던 현판 고증 결과, 명확히 일치
모각본 제작에 충북무형문화재 제28호 각자장 박영덕씨 참여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옥천 이지당 현판(편액)에 대한 전문가 자문 결과 친필인 것으로 지난 29일 확인됐다.

옥천군(이하 군)에 따르면 “도난 위험으로 향토전시관에서 보관 중이던 ‘二止當’ 현판에 대한 고증을 최근에 실시했고, 그 결과 우암 송시열의 친필임이 분명하다는 자문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 증거로 “기존의 송시열 선생 친필로 알려진 <동춘당>, <의악당>, 대자병풍글씨와 대조하여 볼 때 점획(點劃)의 특징이나 결구(結構)의 짜임새 등이 명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옥천 이지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중봉 조헌(1544~1592)선생이 후학을 교육하던 서당이라고 전한다.

각신동이라는 마을 앞에 있어 처음에는 각신서당이라 하였다가, 이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시전(詩傳)』에 있는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에서 끝의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이)라 했다.

그 후 퇴락된 것을 1901년 금(琴)씨, 이(李)씨, 조(趙)씨, 안(安)씨 네 문중에서 재건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충북무형문화재 제28호 각자장 보유자 박영덕씨>▲(사진=보은군청)

우암 송시열은 주자학을 계승해 조선중·후기 성리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조판서와 좌의정을 역임한 문신이다. 병자호란을 겪고 북벌론을 주장하는 세력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특히 문장과 서체도 뛰어나 수많은 명문을 남겼고, 힘 있는 글씨체가 주요 특징이다.

군 관계자는 "자랑스러운 지역의 문화자원을 널리 알리고,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이지당(二止當)’ 현판을 새로 모각하여 이지당 원래의 자리에 걸었다"며, "모각본 제작에는 충북무형문화재 제28호 각자장(刻字匠)박영덕씨가 참여했고, 기존의 현판에서 보이는 특징을 살린 전통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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