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이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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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이정직'
  • 정은진
  • 승인 2019.09.1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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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가묵 (石亭佳嘿, 수경실 소장) >▲(사진=국립전주박물관)

 

 


o 기간 : 2019년 9월 10(화) ~ 2019년 11월 24일(일)까지
o 장소 : 국립전주박물관 시민갤러리
o 전시품 : 《서화첩》, 《석정임동향광첩》 등 50여점



격동의 시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을 살았던 전북 지역의 선비,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4살 때 천자문 수십 자를 하루 만에 익혔고, 5살 때 엽전을 종이에 똑같이 옮겨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9살에 『통감通鑑』을 모두 읽었으며,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재능에 성품까지 겸비하여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천문, 지리, 의학, 수학, 서화 등 두루두루 통달한 유학자, ‘통유通儒’라 부를 수 있는 조선시대 선비는 많지 않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정직의 통유로서의 면모를 조명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전북을 대표하는 융합형 인재, 이정직이 전통을 계승하면서 무엇을 고민했고, 무엇을 지향하며 살았는지 살펴보며, 그의 예술 활동을 통해 과거의 이정직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진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된다. 프롤로그에서는 이정직이 다방면에 능통했던 통유로서의 면모를 먼저 소개한다. 황현은 이정직에 대해 “모르는 바 없고, 통달하지 못한 바가 없는 향후 몇백년 동안 없을 인재”라고 말했다. 풍수, 천문, 의약, 음악 등 문장과 서화 외에도 능통했던 그의 인재상을 볼 수 있는 자료를 선보인다.

1부에서는, 조선에서 근대로, 전통을 배우고 끊임없이 수련하여 후학들에게 전했던 법첩 연구 대가로서의 이정직을 조명한다. 그는 추사秋史 김정희 金正喜(1786~1856)를 배워 썼던 <완당재현첩阮堂再現帖>에서부터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 그림을 보고 배운 <오원재현첩吾園再現帖> 등 유명 서화가의 작품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중국 서예의 맥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단순히 모양을 베껴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 및 조선 명필가의 글씨를 수없이 임서(臨書)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정직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대가들의 필적을 보는 재미와 함께, 끊임없이 서체∙화풍 연구에 매진했던 이정직의 수련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시서화삼절詩書畫三絶’로서 일구어간 회화 작품을 살펴본다. 사군자와 괴석 등 그가 주력했던 회화의 소재를 통해 필력과 상징성을 추구한 깊은 내공을 지닌 문인화 세계를 볼 수 있다. 이정직은 실제 매화보다 매화그림이 훨씬 좋다고 한 바 있다. 매화에 담긴 지조와 절개가 어떻게 그의 붓끝에서 재탄생했는지 감상할 수 있다.

3부에서는, 이정직을 계승한 후학後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송기면(宋基冕, 1882∼1956), 조주승趙周昇, 1854~1935)등의 활동은 전북 서화계를 풍요롭게 했으며, 19세기 후반 이후 전북이 근현대서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북은 언제나 예향(藝鄕)이라고 불렸을 만큼 예술 문화가 발전했다. 근대 서화에서 특히 호남서단에 이정직이 끼친 영향은 지대했고,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성장했다. 전통과 근대 사이의 변화 접경의 한가운데에 바로 선비 이정직이 있었다. 그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인재는 김제로 모였으며, 그 인재들이 스승을 따라 전북에서 근대를 열었다. 3부에서는 이러한 문예 활동 양상을 선보이다.

이번 특별전과 연계하여 두 차례의 연계 강연회도 마련되어 있다.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다양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자세한 정보는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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