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고종대 진찬의(進饌儀)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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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고종대 진찬의(進饌儀)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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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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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30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1892년 고종대 진찬의(進饌儀) 재현행사가
열렸다.



진찬의 가운데 근정전에서 거행하는 외진찬을 중심으로 재현한 이번 행사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대표적인 왕실문화의 하나인 '선조들의 궁중연향'을 보여줌으로써 그속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엿보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이번 재현행사의 연구책임자는 심승구(한국체대 교수, 역사 및 총괄)이며, 고증위원은 김문식(단국대 교수, 의례), 박성실(단국대 교수, 복식), 이은주(안동대 교수, 복식)이었다.





▶ 29·30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렸던 '1892년 고종대
진찬의(進饌儀)' 재현행사
















- 1892년 고종대 진찬의(進饌儀) 재현행사에 대해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마다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진찬(進饌)이란 원래 '왕시릐 어른께 음식을 올린다'는 뜻으로, 조선후기 궁중의 대표적인 잔치의례로 발달했다. 1892년(고종 29년) 진찬의(進饌儀)는 제 26대 왕인 고종의 보령 41세와 등극 30주년을 경복궁에서 축하하는 궁중잔치였다.



12세의 나이로 즉위한 고종은 국정을 주도하지 못하다가, 고종 10년에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 27년에 신정왕후(익종비)마저 사망하자 비로서 친정(親政)체제를 갖추게 됐다. 고종 29년 진찬의는 즉위한 지 30년 만에 독자적인 왕권을 행사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진찬의는 원래 고종의 생일인 7월 25일에 거행해야 하지만, 농사철인 여름을 피해 가을로 연기하여 시행했다. 진찬의는 외진찬 세 차례, 내진찬 여섯 차례 등 아홉 차례의 예행연습인 습의를 거친 뒤, 3일 동안 본 행사(외진찬·내진찬·야진찬)와 뒤풀이 행사(회작·야연) 등 다섯 가지 잔치로 진행됐다.




▶ 왕세자(조선 제27대
순종)에게 차를 받는 고종

첫째 날인 9월 24일 오전 6시경에는 고종을 주인공으로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석하는 근정전 외진찬이 이뤄졌다. 둘째 날인 9월 25일 오전 8시경에는 고종과 왕비를 주인공으로한 왕실가족이 참석하는 내진찬이 강녕전에서, 같은 날 밤 10시경 야진찬이 이뤄졌다. 마지막 날인 9월 26일 오전 8시경에는 왕과 와비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그동안 수고한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왕세자회작이 강녕전에서, 같은 날 밤 10시경에는 야연이 이뤄졌다.



고종은 진찬의식을 통해 군신화합을 이루어 외세침탈과 개화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잔치를 마친 후에는 죄수 석방, 노인 우대, 빈미구제, 세금감면 등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살핌으로써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자주적인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 궁중무용 중 하나인 '무고'

그동안 조선시대 궁중의례를 재현한 행사가 많이 있었찌만, 고종대 진찬의식이 재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1892년 진찬의는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왕조례(王朝禮)로 시행한 마지막 궁중잔치로서, 1897년 대한 제국 성립 이후 황제례(皇帝禮)에 의해 거행한 궁중잔치와 비교된다는 점에서 재현의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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