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의 독립운동가 '우근 류자명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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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의 독립운동가 '우근 류자명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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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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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우근 류자명 선생(1894. 1. 13 ∼ 1985. 4. 17)을 2006년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 1월의 독립운동가,
우근 류자명 선생



우근 류자명 선생은 1894년 1월 13일 충청북도 충주군 이안면 삼주리에서 부친 류종근 선생과 모친 이씨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충주 공립보통학교, 수원 농림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힌 후 1916년부터 충주 간이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4세 때 유인석 의병장이 이끄는 홍주의병을 목격하면서 민족주의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선생은 1919년 충주 간이농업학교 학생들을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비밀이 탄로되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에 서울로 피신하여 청년외교단에 참가하고 다시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신한청년당 비서로 활동했다.







선생은 민족주의자 신채호, 공산주의 이론가 김한 등과 교류하고 당시 유행하고 있던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하면서 점차 한인 아나키스트로 변신했다.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한 선생은 의열단에 아나키즘적인 급진 투쟁이론을 제공하고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작성에 사상적 영향을 줬다. 또한 의열단원 김지섭, 나석주 의거 등을 배후에서 지휘했다.















▶ 우근 류자명 선생의 칼

이후 중국 내 최초 한인 아나키즘 조직인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을 비롯하여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 조선혁명자연맹, 남화한인청년연맹 등 각종 한인 아나키즘 조직에서 활동했다. 동시에 1930년대에 여명중학, 입달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중국인 아나키스트 및 지식인들과 친분관계를 형성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조선민족전선연맹과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며 재중국 한인독립운동세력의 통합운동에 매진했다. 1942년 좌ㆍ우 독립운동세력을 총망라한 통합의회에서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된 선생은 임시약헌 개정 기초위원, 학무부 차장 등을 역임했다.



해방 후 대만으로 건너가 농림원에서 근무하던 선생은 한국전쟁으로 귀국이 어려워지자 창사의 호남대학 농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농학자로서 이름을 떨쳤다. 선생이 1981년에 집필한 수기 《한 혁명자의 회억록》은 중국 내 한인 아나키즘 운동 및 의열단 활동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으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승격했다. 이와 관련해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와 사진을 1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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