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지방교육의 장 강릉향교
상태바
유서 깊은 지방교육의 장 강릉향교
  • 관리자
  • 승인 2006.02.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강릉향교(江陵鄕校)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각 지방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강릉향교는 1313(충선왕 5)에 강릉존무사 김승인(金承印)이 현재 자리인 화부산(花浮山)에 창건했다. 1411(태종 11)에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2년 뒤에 판관 이맹상(李孟常)의 발의로 다시 세웠으나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는데, 한국전쟁때에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09년에 화산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교육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강릉농업학교를 설립했대. 현재는
명륜고등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따.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초정일(初丁日)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거행하고 있다.



강릉향교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해 사성(四聖)·십철(十哲)·육현(六賢)을 봉안한 대성전(大成殿)과 우리나라의 18선현(先賢)과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를 봉안한 동무(東무)·서무(西무)가 있고, 강론을 하던 명룬당(明倫堂)과 학생들이 기숙을 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 등 여러 건물이 있다.









- 보물 제214호 강릉문묘대성전(江陵文廟大成殿)





대성전(大成殿)은 향교 내 공자나 성현의 위패를 모신 건물을 말한다. 보물 제214호 문묘대성전이 있는 강릉향교는 우리나라 지방 교육제도와 맥락을 같이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1127년(인종 5)에 처음 지어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하며, 1313년(충선왕 5)에 당시 강릉존무사(江陵存撫使)였던 김승인이 화부산 밑에 문묘[대성전,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모신 사당]를 갖춘 향교를 건립해 비로소 체계를 갖추었다. 이후 여러 차례 고쳐지었으며, 1909년(순종 3)에는 화산학교를 설립해 신학문을 교육하였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폐교되고 양잠전습소(養蠶傳習所)를 설치한 일도 있었다.












향교는 당시 초등 교육장인 서당 공부를 마친 선비들이 공부하던 중등 교육장으로 지방 최고의 공립 교육기관이었따. 또한 시설과 학제가 성균관과 같아 규율이 엄정하며, 면학의 기운이 높아 대무관(大무官)이라 일컬음을 받았고 수많은 선비를 배출했다.



현재 경내에는 문묘에 속하는 '대성전', 향교 내 성현들을 배향하는 대성전 전면 양측 건물인 '동무'와 '서무', 대성전 앞 내삼문과 연결된 건물인 '전랑', 향교에 속하는 '명륜당',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명륜당 전면 양측 건물인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한 건물 군을 이루고 있다.



규모나 전통에 있어서 전국 향교 중 제일이라 할 수 있다. 대성전은 향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집인 문묘의 '정전'으로 건축되었고, 공자를 비롯해 중국 성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단순하나 절제된 힘이 느껴지는 맞배지붕과 어우러진 조경의 엄숙한 공간성은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몸소 실천하려는 선비들이 엄중함을 느끼게 하며 의식을 행하는 공간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