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식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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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의 부재
  • 관리자
  • 승인 2006.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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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1976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세검정(洗劍亭)은 원래 서기 1500년
~ 1505년경 연산군이 탕춘대를 마련하고 유흥을 위한 수각(水閣 : 물 위에 지은 누각)으로 세웠다. 일설에는 숙종 때
북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한 군사들의 휴게시설로 세운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세검정(洗劍亭)은 광해군 15년인 1623년 이귀,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 사천(沙川, 홍제천)의 맑은 물에
칼을 씻었다하여 전하게 된 이름이다. 칼을 씻어서 칼집에 다시 넣는 일련의 상징적 행동으로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며, 이 세검정은 이들의 성공으로 인조반정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 세검정(洗劍亭)

 






 






이 곳은 인조반정 당시만 하여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나 간장 담그는 기술자와 창호지 만드는
기술자가 상주하여 ‘메주가마골’이란 별칭도 생겨났으며, 그 중 장판지를 만들던 조지서(造紙署) 터는 지금까지 전한다. 그러던 중
1941년 인근 종이 공장의 화재로 세검정이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은 것을 겸재 정선의 『세검정도』를 참고하여 1977년 5월에
다시 복원하였다.


평창동과 정릉을 연결하는 북악터널을 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세검정을 지나야 하며, 지금은
주위 마을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이 사랑받고 있다. 9월 ‘이달의 서울시 문화재’에 선정된 세검정을 찾아갔을 때에도 많은
주민들이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영조 24년(1748) 중건하였을때 세검정 현판
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유 있고 한가로운 세검정의 모습을 촬영하던 취재팀은 보고 싶지 않은 장면과 만나게
되었다. 세검정 안에서 흡연 중인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촬영에도 아랑곳 않고 너무나 당당히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문화재 안에서
흡연은 위험하다는 취재팀의 말을 듣고서야 담뱃불을 껐다.



지난해 낙산사 소실과 올해의 서장대 및 창경궁 문정전 방화 뒤 많은 시민들이 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작 ‘나 하나쯤이야.’, ‘여긴 괜찮겠지.’라는 식의 안일한 사고방식만은 변하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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