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지나 돌아온 유골, 무슨 근거로 내 아버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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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지나 돌아온 유골, 무슨 근거로 내 아버지인가?
  • 관리자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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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한일 양국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골실태 조사 방침을 밝힘으로써 종전 60년이
지나도록 혈육의 생사조차 파악하지 못한 유가족 및 관련단체들은 해결되지 못한 진상규명 및 피해보상 문제가 진척될 것을 기대했다. 정부
방침 보도 이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주선으로 유가족 최낙훈 씨(65)와 박미자((62) 씨를 만날 수 있었다.












 




▶ 최천호 씨가 근무한 협화훈련소


 

최낙훈(65)의 아버지 최천호 씨는 1942년 4월 어려웠던 생계 탓에 자원해서 일본 협화훈련소로
떠났다고 한다.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도 지어봤지만 요령이 없어 가족들을 남겨놓고 본인 혼자 서울에 온 지 한 달여가 지난 뒤였다.
일본으로 간다는 편지를 받아 가족들이 서울로 올라왔지만 이미 떠난 뒤였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행방불명 상태이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유품으로 근무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는 당시 날짜와 함께
‘제1협화훈련소’란 기록이 있으나 그 명칭은 각 기업마다 설치된 작업장의 공통명칭으로 일본측으로부터 정확한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통보 받았다.

 






 






1971년 일본정부가 최초로 한국정부에 전달한 피징용사망자명부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현재까지 사망신고가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다. 최 씨는 올해 90세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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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자(62)의 아버지 박면수 씨는 당시 어머니가 박 씨를 임신해있던 1943년 일본 해군에 소속되어 설비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타국에서 사망했다. ’99년 아버지 사망 여부 및 공탁금 관련 자료 추적 중 뒤늦게 피징용사망자명부에 등록되어있음을
발견하고 유골 송환을 요청했으나 일본 후생성은 '48년에 이미 사망통보와 함께 유골송환이 되었으며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음을
알렸다.

이번 만남을 주선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 역시 강제징용피해자 유족으로서 이제라도
한일 양측 정부가 강제징용피해자 보상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나 단순히 유골이 송환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