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호신불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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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호신불 찾았다
  • 관리자
  • 승인 200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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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 사명대사가 원불로 지녔던 금동여래좌상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던 조선 중기의 고승 사명대사의 호신불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2일,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추진하는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을 통해 사명대사가 원불(願佛:
호신불)로 지니고 있었던 금동여래좌상을 발견했으며, 불상 복장인 원장을 통해 이를 최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불상은 대성사 주지 운봉 스님이 은사 해봉 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아 보관하다가 지난해 이뤄진 조사를 통해 발견되었으며, 높이가
10㎝ 남짓한 작은 크기의 불상이지만 조형성이나 양식 측면에서 결코 예사로운 불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조사단이 예전 자료와 복장유물
조사를 실시하여 사명대사 원불임을 밝혀내게 되었다.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이 사명대사 원불로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800년 남공철이 찬한 「사명대사기적비(四溟大師記積碑)」였다.
이후 1912년 조선총독부가 건봉사 낙서암 전송운대사에게서 불상을 촬영함으로써 대성사 불상이 사명대사 원불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료가 남게 되었으며,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1932년) 「보물조」에서 사명대사 원불의 존재가 다시금 확인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건봉사와 사명대사 관련 유물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이 불상 역시 이대로 사라질 뻔 했으나 2006년 진행한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을 통해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명대사 원불은 고려 말, 조선 초 왕실발원으로 금강산 일대에서 많이 조성된 불상 중 하나로 추정되며, 당시에 유행했던 라마교
불교양식을 잘 소화시켜 크기는 작지만 당당하고 품격 높은 예술성과 종교적 이상성이 잘 어우러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불상이 더욱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규합하여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전후 정전회담에도 참여했던 조선시대의 고승이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무고한 백성들과 약탈된 통도사 불사리를 되찾아 왔으며, 불사리 12과를 건봉사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사명대사의 이런 업적들은 갖가지 전설과 무용담으로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불상 복장에서 나온 사명대사 원장







 





불상 복장에서 나온 원장(願狀: 부처에게 소원을 써서 기도할 때 부처 앞에 바치는 글장)은
1584(萬曆 甲申)년에 쓴 것으로, ‘釋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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