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의 시초 ‘동국장’. 공동체의 정신이 담긴 유산 - 해남 ‘동국장’ 명인 한안자
이 시리즈는 2024년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기념하여 진행되는 기획특집입니다. 전통 장과 장 담금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기획되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 담그기 문화는 한국 음식의 기본 양념인 장을 만들고 관리, 이용하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 기술을 모두 포함하며, 우리의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것이 장 담그기 문화에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국민과 세계인에게 장 담그기 문화에 대해 알리고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전할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유네스코 등재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국가유산청과 외교부, 한식진흥원, 전통식품 명인들을 비롯한 다양한 민·관 단체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 장이라 불리는 ‘동국장’의 명인, 한안자 명인과 ‘장 담그기’ 문화가 갖는 의미와 보존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식품명인 40호, 동국장 한안자입니다.”
전라남도 해남, 높은 건물 없이 산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유민식품’이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으로 알려진 ‘동국장’의 한안자 명인이 있는 곳이다. 동국장은 우리나라 고유의 장으로, 끓는 소금물을 이용해 된장과 간장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먹는 것이 특징인 생장이다. 된장과 간장의 장점을 동시에 가져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동국장 맑은국을 곁들인 가자미구이’로 만찬 자리를 빛내기도 했다.
한안자 명인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장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고,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의 동국장 담그는 비법을 전수받았다. 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양가의 장 제조 비법을 전수받으며 전통 음식과 장에 대한 애정과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다. 명인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야겠다는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그 마음으로 동국장을 만드는 자세한 방법이 나와있는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해 여러 고문헌과 자료를 연구하여 옛 기술과 맛을 복원했다.
“누가 살기 위해서 누구를 죽이면 안 되잖아요. 그건 장 담그기의 정신이 아닙니다.”
장 담그기 문화의 가치는 ‘공동체’에 있다. 명인과 전수자는 유민식품을 통해 장 담그기 문화의 가치를 살리고자 노력하여 사회경제적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청정 해남 지역에서 재료를 수급함으로써 양질의 장을 만들고 지역 경제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하며, 지역민을 고용하고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관광 산업 활성화 측면에서도 동국장은 큰 역할을 한다. 여러 학교, 기관, 여행단체들이 발효아카데미를 체험하기 위해 해남을 찾는다. 해남미남(味南)축제에서 동국장을 활용한 음식을 맛보고 장 담그기 체험을 한 사람들은 다시 해남을 방문해야겠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한안자 명인은 동국장을 통해 전통의 맛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와 공동체도 함께 살리고 있는 것이다.
임대웅 전수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이후 장 담그기 문화 보존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부가 이러한 영향력을 이해하고 거시적·장기적인 안목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장 담그는 과정을 공무원들이 직접 경험해보면 좋겠다고 명인은 덧붙였다.
“중요한 건 장을 담글 수 있는 공동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장을 담그고 장독을 보관하는 곳이요.”
마지막으로 현대인들이 과연 장 담그기 문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명인에게 질문했다. 명인은 기후변화로 인해 장 담그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답했다. 장 담그기에는 절기에 따른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중요한데, 그 조화가 흔들리고 있으니 장을 담그는 시기와 방법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명인은 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숯이나 고추 등을 새끼줄에 엮어 집에 장 담금을 알리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장 담금을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기던 선조들의 지혜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어가기엔 장 담금의 의미와 가치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 담그기가 보편적 생활관습형 무형유산이라면, 사람들이 장 담금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고 보편적으로 생활 속에서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 측면에서, 장류 식품명인들을 중심으로 지역 장 담그기 문화를 확산하고 지역 공동체의 문화로서 후대에 전승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에서 장을 담글 수 있는 장소와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명인의 의견이다.
국가유산청은 지금까지 장 담그기 문화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문화유산’이기에 그 가치가 소홀히 여겨졌다고 언급했다. 국민에 의해 국민이 보존해야 하는 문화인 만큼, 국민의 의견을 듣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국가유산청의 과제일 것이다.
현장 영상은 CPN문화재TV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yP5LDBS0NkE?feature=shared